이종태 전)농협중앙회 여수·순천 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여수·순천 시지부장.jpg

나이 들어 책을 가까이하다보니 때론 생뚱맞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빈부격차를 시작으로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여러 분야의 차별 속에 사랑과 성생활(SEX)의 중산층은 얼마나 되고 그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하는 궁금증이다. 수많은 예술인들이 찾아 헤매는 최고의 사랑도, 음담패설이나 야동 같은 남의 이야기나 일방의 이야기가 아닌 공기와 물같이 소중한, 평범한 우리들의 사랑과 성에관한 소박하면서도 소중한, 진솔된 이야기를 한번쯤 해봐야 하지 않을까. 농사를 지어보거나, 자연 다큐 기록화면에서 연어의 회귀나 교미 후 숫사마귀가 암사마귀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을 보면 모든 생물의 종족보존 본능이 얼마나 강한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거기다 인간은 유일하게 배란 목적을 넘어 쾌락을 목적으로 성생활을 진화시켜오지 않았는가.

지난주 나는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와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를 읽었다. 길버트의 이 책은 1년에 걸친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해가며 행복을 찾는 여행기로 천만이 넘는 독자에 읽히며 여성의 가치와 가능성, 운명을 더욱 확장했다는 찬사를 받은 이야기다. <와일드>는 여자혼자 4,285 km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이라는 극한의 자연에 도전하며 한 인간의 놀라운 변신과 성숙을 보여주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미국인에 깊은 감명을 준책이다. 두 책 모두 이혼과 온갖 불운에 맞서 잃어버린 자기를 찾는 당찬 여자들의 논픽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내가 두 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책의 내용 중 두 가지 내용에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먼저 길버트가 하는 이 말이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그냥 수탉이죠, 아니면 염소거나.” 후회와 자괴감에 한동안 중치가 막히는 경험을 했다. ‘대부분’이라는 말에 그래도 위안을 받으며 오직 나만의 그리고 남자들만의 세계를 반성해보았다. 행복한 삶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사랑과 성’에 얼마만큼 관심을 가져왔고, 노력을 하고, 확인을 하며 정보를 공유했을까? 배움의 기회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마광수가 <즐거운 사라>를 통해 시도한 실용적 쾌락주의가 엄하게 단죄되는 이 나라에 살기 때문에, 숱이 많은 호랑이 눈썹이나 두툼한 입술, 야무진 체격을 갖지 못하고 태어나서, 사랑은 배우자의 몫이고 나는 그저 홈대가 채워지면 배설하기에 급급하게 살아온 습관 때문에, 소위 작업을 하고 객기를 자랑하는 일방적 이야기들만이 뇌리에 맴돌지 진실은 항시 가식과 체면의 뒤에 숨어있었다.

<토지>라는 문화적 대서사를 쓴 박경리는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였으나 전쟁중 남편이 행불되고 세 살짜리 아들마저 죽자 펜과 원고지로 삶을 지탱한다. <불신시대>로 문단에 등장하는 박경리를 보며 문학계남성들은 그의 작품성보다는 곱상한 젊은 전쟁미망인의 출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한다. 그러나 박경리는 철저하게 은둔과 고독한 생활을 하다 “모진세월가고 늙어지니 이리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삶을 마감한다. 나는 박경리의 숭고한 삶에 존경을 보내면서도 아쉬운 일면을 가져보았다. 먼저이야기한 길버트와 셰릴 이라는 두 여자의 삶과 너무나 크게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두 여자는 우울증과 정신적 공황으로 자살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남의시선을 추호도 의식하지 않고 지금 현재의 삶에서 욕망과 즐거움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 남편이 있는 몸으로 마음이 끌리는 남자와 밤을 같이 보내며 그러한 사실을 가족과 독자에게 숨기지 않는다. 미망인이면서도 인간적 욕망을 억제하며 젊음을 보내고 늙은 후에야 자유를 찾는 박경리. 망가지면서도 복원을 찾고 인생에서 어떤 종교 보다 그저 웃는 것이 소중하다는 말에 동의하며 “두려워? 알게 뭐야” 라는 말을 되뇌며 용기를 회복하는 두 여인. 문화의 차이일까 서로 다른 기질 때문일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는 “천당은 올라가는 길이고 지옥은 내려가는 길이라 그 여정은 달라도 최종 목적지는 똑같다.”라는 말이 인용된다. 박경리와 두 미국여인이 성취라는 최종 귀착 지는 같을지 몰라도 그 삶의 여정에서 쌓은 즐거움과 행복감은 같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글로벌시대 관습과 습관과 인식을 조금 바꾸어보면 어떨까.

인간이 동물과 같은 체위를 유지하다 배를 맞대고 얼굴을 마주보며 사랑을 주고받은 뒤부터 상대방의 외모와 섬세한 정감에 신경을 쓰고 사랑의 방정식도 참으로 복잡해 진 것 같다. 마음이야 엑스레이처럼 찍어 보여줄 수 없지 않은가. ‘오늘은 정심시간에 친구와 먹은 장어탕 때문인지 오늘밤엔 당신을 죽여줄 것만 같다’는 전화라도 해주어 아내가 기다림과 설렘으로 맑은 눈이 촉촉이 젖는 신비한 경험부터 시작해보자. 관심과 노력은 당신을 춤추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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