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민(마동 중학교 3학년)

남녀 공학에서는 책상이나 의자 같은 무거운 짐을 옮길 땐 거의 남학생들에게만 시킨다. 또한 전문 직업인으로 일하는 여자에게는 여의사, 여직원, 여배우, 여교사 등 ‘여자’를 나타내는 수식어가 붙는다. 일상화된 이런 일들만 둘러봐도 아직 우리사회에 짙게 드리운 남녀차별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양성평등 교육이 세기를 뛰어넘어도 필요한 까닭이고 거듭되는 사회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거북이걸음을 유지하고 있는 남녀차별에 대한 행보를 알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든 현재에도 우리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에 대한 인식은 다르고 역할도 구분되어 있다. 조선시대 고전소설인 ‘홍계월전’에서도 남자와 여자에 대한 차이를 차별로 드러내는 사회인식을 엿볼 수 있는데 영웅이라서 뛰어난 무술 실력과 지혜를 지녔음에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편에게 무시당한다.

그녀의 시부모님은 계월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며 아들이 아닌 며느리의 편을 들어주지만 소설의 배경이 명나라인 만큼 조선시대 유교에 의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형편없이 낮았음을 생각하면 작품의 의도에 대해 여러 의견을 논할 수 있다. 사대주의 사상이 당연했던 시대라 그럴 수도 있지만 그만큼 사회적 구성원으로 동일하게 여자를 대하지 않았기에 명나라를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했을 수도 있다. 소설 속 홍계월이 실제 인물이었다면 그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유리 천장이란 여성과 소수민족 출신자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말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라는 의미인 경제용어인데, 충분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음에도 관습화 된 문화처럼 굳어진 부정적인 인식의 단어이다. 몇 세기가 지났음에도 뿌리 깊게 박힌 남녀차별은 최근 홍대 몰카 사건마저도 여자가 피의자라서 빠른 수사가 이루어지며 편협된 시각에서 수사를 진행한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수많은 몰카의 피해자는 죄다 여자들이다시피 했는데 다수의 흔한 사건의 피의자였던 남자들에 대한 처벌이나 수사 속도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짚어본다면 편협수사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성(性)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지 문화적으로 형성된 젠더 현상과 다르다. 남자 어린이가 핑크색 인형이나 옷을 사달라고 할 때 이전에는 이상하다고 느끼는 부모가 많았다. 여자 어린이가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면 그 꿈을 응원 해 줄 수 있는 부모도 적었던 지난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자애가 뭐 그런 것 가지고 우니?” “여자애가 조신하게 좀 있을 것이지!” 라는 말들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젠더를 탈피해야 한다. 최근 몇 년 간 패션·뷰티 업계에서는 ‘성 중립’을 의미하는 ‘젠더리스’가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다. 젠더리스는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지 않음으로 ‘여자는(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자세를 말한다. 여자와 남자이기 이전에 우리 모두는 존엄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할 마땅한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여자이기에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에게 상품화되거나 미끼로 이용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자라서가 아닌 사람이라서 올바른 시선으로 평가받으며 사회에서 대등한 관계를 맺으며 동일한 사회구성원으로 서로를 대해야 할 것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인종차별이 이루어진 것도 남녀차별이 있었던 까닭도 사익을 챙기기 위한 잘못된 가치에서 비롯된 것이고 어느 누구도 그 최초를 허락해 줄 권한은 없었다는 것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무수한 억압과 희생은 우위를 차지하고 싶은 이들의 간교한 생각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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