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수 킹스크리스찬 스쿨 2학년

▲ 김은수 킹스크리스찬 스쿨 2학년

흔히들 말하는 천고마비의 계절이 왔다는 것은 또 다른 무언가의 시작을 의미한다. 가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긴다. 길거리에서나 산에서 쉽게 보이는 단풍나무는 가을이 왔다는 뜻이다. 다양한 크기와 저마다 다른 색깔을 뽐내는 단풍잎을 볼 때면 가을은 채 만끽할 사이도 없이 금방 지난다는 걸 깨닫는다. 단풍잎들은 그 짧은 시간을 아름답게 빛내고 곧 이어 올 겨울에는 이미 바스라지고 말 준비를 마친다. 단풍은 겨울에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몸에 색깔 입히기를 멈추지 않나보다. 아니 오히려 멋있는 가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색으로 최후의 자신을 채색하며 늘 새로운 탄생을 기다린다.

나는 단풍잎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실패하기가 두려워서 시작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스스로를 볼 때마다 늘 답답하고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처럼 쉽게 바뀌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멋지게 해내는 일들을 부러워하지만 뭔가 하지는 않는다. 스스로를 자책해 보지만 일어설 힘도 없이 무너질 때가 더 많았다. 이런 내 생각과 마음을 조금씩 바뀌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 있다. 그 분은 바로 나의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나보다 더 소극적이시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분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도전하는 것에 대해서는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계신다.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다는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게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어릴 적에 주변 환경 때문에 하고 싶던 공부를 포기한 일이 후회되고, 너무 아쉽다고 하신다. 나만큼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힘과 용기를 주시며 마음을 다독이신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신 게 썩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 조언이 현실적이고 마음 시리게 다가온다. 어릴 적부터 나는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춤추는 것을 많이 부끄러워 하기도 했지만, 춤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예배 시간에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중학생 때 무용을 배우게 됐다. 수업시간은 물론이고 혼자서도 매일 연습하면서 무용하는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미처 생각지도 못한 높은 벽이 나를 가로막았다. 친구들은 나보다 실력이 월등하게 좋았던 것이다. 선생님께서 나를 칭찬하실 때면 그저 위로일 뿐이라고 받아들였다. 함께 연습하던 친구들과의 불화도 너무 심해 속앓이를 많이 했다. 점점 즐겁던 무용시간은 고통스럽게 변했다. 무용은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상황을 둘러싼 다른 일들이 너무나 괴로워 결국 무용을 그만두었다.

아직도 그 때를 떠올리면 자신이 너무 답답하고 한심하다. ‘그 때 계속 무용을 배웠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떨까?’라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나도 그대로 있지 않기에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서려 한다. 지난 일은 주위 사람들에 흔들려서 함부로 결정하지 말자는 신념을 가지게 해주고,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게기가 된 소중한 추억이다.

이제는 도전해서 겪는 실패가 도전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보다 훨씬 값지다고 생각한다. 두려워서 뭔가 해 보지도 않고 불안한 감정만 느끼다가 늘 뒤돌아서는 것보다 값진 경험을 위해 힘들어도 하나씩 도전해 볼거다. 물론 다시 예전과 같은 비슷한 어려움이 가로막을 수도 있다. 해마다 떨어지는 단풍잎이지만 매년 가을을 기다리기 위해 다른 계절을 묵묵히 견뎌내는 것처럼 나에게도 다가올 가을을 위해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겨울이 지나고 나면 다음해에는 반드시 가을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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