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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가는 딸 보름달 보고 울고 아쉬운 아버지는 술로 달래는 밤
최인철 기자  |  hwakae72@gycitiz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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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0  21: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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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황한 보름달이 처마 밑에 으스름하게 걸리는 저녁이었지요. 얼큰하게 한 잔 걸치신 아버지가 돌담길 사이로 휘엉청 걸어오시는 발자국 소리를 가만 듣고 있었습니다. 사공이 부르는 뱃노래가 담장을 넘어 자꾸만 문지방을 흔들어 댔습니다. 텁텁한 아버지의 막걸리 냄새가 바람을 타고 묻어오는 듯도 했지요.

대문 앞을 지키고 섰던 백구는 반가운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타박이었는지 컹컹컹 목울대를 밀어올리고 바튼 울음을 짖어댔고 허물어지는 집과 함께 세월을 함께한 감나무가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라 바짝 마른 늙은 이파리를 떨구었습니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사립문을 열고 아버지는 들어오시자 그즈음 갑작스럽게 쇠약해져 자주 몸 져 눕곤 하던 병약한 어머니도 방문을 열고 나왔고 아직 나이가 어린 여동생과 남동생들도 버릇없는 놈이라는 아버지 타박이 귀찮아 잠실 뽕잎 사이를 빠져나오는 누에처럼 꿈틀대며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살림 중에도 옹기종기 태어난 자식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은 풍년들어 가을걷이가 끝나고 난 뒤 들녘을 바라보는 눈길처럼 흐뭇해 보였습니다. 혹여나 자식들 배곯을 일 있을까봐 하루하루 힘겨운 농사일을 살핀 세월이 벌써 서른 해를 넘겼으니 이 씨 집안 가장의 배가 아니 부를 까닭이 없었지요.

이미 큰딸과 큰아들에 이어 여느 딸들과는 달리 섬머슴 같던 둘째 딸까지 혼인을 시켜 일가를 이루었으나 아버지에게는 아직 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쌍둥이 남매를 비롯해 여전히 품고 챙겨야할 자식들이 딸 셋에 아들이 둘이었습니다.

자식들의 마중인사를 받으면서도 아버지의 입에서는 여전히 사공이 배를 젓고 있었습니다. 핏기 없는 얼굴 가득 어머니의 지청구 쉼 없이 흘러나왔지만 아버지의 배는 아마도 유달산을 등지고 유유히 먼 바다를 향해 출렁거리고 있을 게 분명했지요. 그리고 이내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거칠게 안방 문지방을 넘어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처마에 걸렸던 보름달이 뒷산을 향해 기우는 동안에도 가정을 꾸려 집을 떠난 언니들의 빈자리가 느껴질 새라 집안을 살뜰히 챙기던 셋째 딸은 쉽게 잠에 들지 못했지요. 스물하고도 네 해 동안 태어나 자란 이 집을 얼마 되지 않아 떠나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혼처가 정해진 것입니다.

그 마저도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는 사내를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맞아 들여야 할 처지였으니 마음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지 수 없었던 게지요. 혼약을 맺은 사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작은 논밭을 일구며 사는 농사꾼이라는 것과 작은 흑백사진 속 얼굴 밖에 없습니다.

어찌 그리 가난한 농사꾼에게 곱디곱게 키운 셋째 딸을 시집보낼 생각을 한 것인지 무심한 부모가 원망스럽기까지 했지요. 그리 결정해놓고 저리 요란하게 코까지 골며 깊게 잠든 아버지의 모습은 차라리 야속할 지경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셋째 딸에 다정했던 아버지여서 더욱 그러했을지도 모릅니다.

제 자신도 모르게 뺨을 타고 두 줄기 눈물이 속절없이 흘러내렸지요. 셋째 딸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그저 백운산 기슭을 밝히며 기울어가는 애꿎은 보름달만 노려볼 뿐이었습니다. 나중에야 곱게 키운 딸자식을 시집보내야 했던 아버지가 괴롭고 내내 아쉬운 마음을 술로 달랬다는 것을 알게 된 셋째 딸은 또 얼마나 울어야 했는지 짐작되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오늘 앞에 놓인 사진 한 장은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부모님이 정해준 대로 얼굴도 모르는 사내와 결혼해야 했던 어느 어머니의 결혼사진입니다. 그런 까닭인지 결혼식을 올리던 당일에야 신랑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처자의 얼굴이 조금 어둡지 않나요.

신랑도 마찬가지였는지 엷은 미소라도 잠시 머금었으면 좋으련만 그저 무표정하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평생의 기록이 될 결혼사진은 그렇게 밀랍인형 같은지 조금은 안쓰러울 지경입니다. 서로 팔짱은 끼고 있지만 신랑과 신부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 일입니다.

당시는 아무래도 자유연애보다는 매파를 통해 혼처를 알아보고 부모님이 정해주는 대로 결혼하는 방식인 중매결혼이 대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개방이 빠른 서울과는 달리 시골 깡촌에 불과했던 광양의 경우 쉽사리 자유연애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었지요. 그런 까닭에 매파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파를 통해 상대집안의 재력과 가풍은 물론 신랑신부의 인물과 인성의 됨됨이까지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매파의 거짓 정보 때문에 혼인이 파국으로 치닫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지요.

그래도 이런 중매결혼을 통해 모르는 사내와 처자가 만나 일가를 이루고 지금껏 자식들 낳고 키워낸 것을 쉽사리 볼 수 있으니 남녀의 인연은 참 오묘한 구석이 있다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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