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재

▲ 임광재

24절기로는 봄을 재촉하는 우수이지만 쉽게 물러서기를 주저하는 동장군이 주변에서 서성거 리고 있어 따뜻한 불에 가까이 있고 싶다.

마침 우수와 겹친 정월 대보름을 맞아 곳곳에서 달집 태우기 행사가 열렸다. 그곳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쳐다보노라면 누구라도 그 열기와 현란함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녁노을 지고 달빛 흐를 때/작은 불꽃으로 내마음을 날려 봐/저 들판 사이로 날면 내 마음의 창을 열고/두 팔을 벌려서 돌면/야 불이 춤 춘다 불놀이야

1980년도에 가수 홍서범이 ‘옥슨80’에서 활동 하면서 TBC 주최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불러 금상을 받으며 대학 그룹사운드 열풍을 주도하였던 ‘불놀이야’의 첫 소절이다. 그리고 다음 시 구절은 1919년 발표되어 근대자유시의 효시로 알려진 주요한의 불놀이의 일부다.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싯벌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 보니, 물 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야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짐작컨대 홍서범은 주요한의 시 불놀이에서 착상을 얻어 불놀이야의 노래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불놀이야 노래와 불놀이의 시를 되뇌이면서 불을 소재로 한 노래와 시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상을 이렇게 적확(的確)하게 표현할 수 있는가 하며 공감이 간다.

전원마을에 살면서부터 평소에 불을 지펴 피워야 할 일이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다. 황토방 아랫목에 등허리를 지지기 위하여 아궁이에 군불을 넣기도 하고 벽난로 안의 장작에 불을 붙 이는 일로 하루에 한번 이상은 불을 지피지 않을수 없다.

불을 지피고 불이 잘 타도록 유지하는 일이 간단한 일은 아니나 어릴 때부터 계속 해왔던 놀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니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벽난로나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싶다하여 화학 제품인 착화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아닌 바에야 성냥이나 라이터 또는 토치램프로 커다란 장작에 곧바로 붙여 보려 하여도 좀처럼 붙지 않는다.

반드시 자잘한 불쏘시개에 자그마한 불씨를 붙여 시작하여 나중에 큰 불을 얻어야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불쏘시개도 처음에는 불이 잘 타면서 오래가는 마른 솔잎가지 같은 것을 맨 밑에 깔고 그 위에 잔나무가지를 얹어놓고 불을 붙인다.

그것들이 타면서 불이 힘을 얻는 것을 보고나서야 굵은 나뭇가지나 장작을 얹어 불을 키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장작의 무게에 눌려 작은 불이 힘을 쓰지 못한 채 제풀에 지쳐 꺼져버리고 만다.

벽난로에서 화려한 군무를 추듯이 날름거리며 타오르는 불꽃들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신비감에 몰입되어 쉽게 눈을 떼지 못할 때도 있고 불에 관한 신화 또는 불에 얽힌 이야기들이 떠오르며 상념에 젖곤 한다.

우리는 불의 기원을 신화적으로는 향나무에 벼락을 내려 인간에게 불을 붙여 주고 그 형벌로 아직도 간을 독수리에게 쪼임을 당하고 있다는 프로메테우스에서 찾는다.

과학적으로는 나무와 나무, 부싯돌이나 황철석의 마찰에서, 철학적으로 프랑스의 어떤 철학자는 사랑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한다.

그는 원시인들이 불을 발견하게 된 원동력이 사랑의 행위에서 사람과 사람의 마찰의 결과 환희에 이르게 되고 그 환희는 뜨거움을 동반한다는 얘기인데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인다.

우리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이 몇가지 있겠지만 불을 사용하느냐의 여부도 그 한가지라고 할 때 우리 인간이 최초로 사용한 불은 어떤 색깔의 불이었을까. 이 겨울 우리가 정감을 느낄 수 있는 빨간색 불로 암적색 아니면 연분홍색 불이었을 것이며 온도는 900도 이내의 따뜻한 불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불을 사용하면서 문명의 획기 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전기와 원자력을 불과 같은 에너지라고 정의할 때 오늘날 국력의 크기와 무기경쟁체제에 있어서도 결과적으로 누가 더큰 불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 또는 상대방의 불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제어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 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불과 빛이 형제간이라고 한다면 불이 있는 곳에 반드시 상반되는 어둠이 존재하고 반드시 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을 마주한 뒤쪽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이고 정열을 불태우던 사랑도 재만 남기고 사그라지는 것이 다반사 아니던가.

그리고 불은 잘못 사용할 경우 우리 인류의 소중한 재산을 다시는 소용없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기에 형법에서는 일부러 타인의 물건이나 자신의 물건에도 불을 놓아 태워버리는 경우에는 방화죄로 중하게 처벌할 뿐만 아니라 과실로 불을 관리하지 못하여 물건이 탄 경우에도 처벌하기도 한다.

과실로 타인의 물건을 손괴한 경우는 처벌 하지 않으면서 실화만 처벌하는 것은 불이 지니 는 특수한 위험과 광범위한 피해범위 그리고 막대한 피해 때문이다.

실화란 과실로 불이 나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전기 콘센트를 뽑지 않아 불이난 경우, 주방에 음식물을 올려놓고 깜박 잊고 과열되어 불이 난 경우, 유류탱크 등 위험물 옆에서 담배를 태우다 불을 낸 경우 등을 말하는데 자기 집을 다 태워버리고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실화 죄로 형사처벌까지 받는 경우를 보면 사정이 참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대국가의 신화의 일부인 구약성경의 대홍수 심판이 끝나면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징표로 무지개를 남겨주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앞으로 이 세상이 다시 심판을 받는다면 마침내는 우리 인간 스스로가 만든 무시무시한 불덩어리나 다름없는 수많은 핵폭탄의 불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도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대보름 달집태우기의 불꽃을 보면서 시작한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간 것 같기도 하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들이 이 불이야기로 조그마한 핫팩이 주는 온기나마 느꼈으면 한다.

불을 떠나 살 수 없는 우리들로서 불을 관리하지 못하여 이곳저곳에서 발생하는 비극들을 생각할 때 따뜻함을 느껴 좋은 만큼 불로 인한 탈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이 글을 쓰는 임광재 씨는 1978년 경찰에 입문, 23년간 주로 수사업무를 봐왔다. 지난 2015년 장흥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정년하기까지 광양을 비롯한 여수, 순천, 고흥, 나주, 곡성, 보성경찰서 등에서 법 없이도 사는 사람들을 위한 법집행을 위해 애써왔다. 이후 2017년 봄 봉강면 도솔전원마을에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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