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한 텔레비전에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인기프로가 있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사업의 실패나 인간적 배신 등으로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거나, 육체적 건강을 잃은 사람들이 격리된 자연에서 생활의 변화를 통한 치유를 찾는 내용이다.

우리 조상들도 섬기던 왕조가 바뀌거나, 사화나 당쟁을 피해, 유배나 개인적 소신 등으로 자연에 귀의 하여 풍류와 은일(隱逸)을 즐기며 강호에 묻혀 시가(詩歌)를 즐기고(江湖歌道) 위로받으며 살아온 역사도 가지고 있다.

이 프로를 보며 나는 내가 사는 이 땅을 생각할 기회를 가져보았다. 호주를 여행하며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맑은 바다 속 산호에 감탄하는 우리 들에게 이민 가 살고 있던 관광버스 기사는 “한 국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양질의 갯벌이 있지 않으냐?”며 반문하였다.

우리들이 나누어준 갓김치를 그렇게 맛있게 먹던 그 친구는 떠나온 조국의 어떤 모습을 못 잊고 추억하며 살까?

너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아담한 산들, 끊어질듯 이어지는 고즈넉한 고개 마루, 골짜기마다 흐르는 크고 작은 개천과 강들, 사계절이 타협이라도 한 듯 심어놓은 다양한 나무들과 들풀들. 땅이 비좁아 자주 보며 살 부침하고, 토닥이며 살아온 소박한 사람들의 정다운 모습일까? ‘헬 조선’을 이야기하고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아우성을 듣고, 몇 차례의 외국여행을 회상하며 나는 ‘금수강 산’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스스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며 도시국가 중심의 발전역사 때문인지, 사회공 동체를 떠나 혼자 하는 삶의 이야기는 꿈도 꾸지 않아, 홀로 자연에 귀의하는 이야기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은거에 대한 두 이야기를 나는 읽어 보았다.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제도와 물질의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험과 참된 삶과 진실이 무엇인지를 찾아 자연과 독서를 즐기며 영혼을 발돋움하기 위해 월든 호숫가를 찾는다.

도끼 한 자루와 28달러 상당 자재를 들여 움막을 짓고, 1845년 3월부터 2년 2개월 간 생활하였 다. 그는 오직 삶만을 직시하며 허위와 위선에 타협하기 쉬운 전문직보다 정직한 육체노동을 택한 다. 최소한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 속에서 부질없는 근심과 힘든 노동을 경계하며 진정한 자유와 마주한다. 다만 실험적 일시적 삶이였지 온전한 자연에의 귀의는 아니었다.

또 한 이야기는 『숲속의 은둔자』 에 나오는 이야기다. 1986년 어느 날 수줍음 많고 똑똑했던 20살 청년 크리스토퍼 나이트가 고향을 떠나 미국 메인주의 노드숲에서 27년을 산 실화를 다룬 다. 저자 마이클 핀클은 오랜 기간 탐문과 조사를 통해 2013년 미국판 ‘로빈손 크르소’라 칭하고, ‘사회적 자살’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인간의 고독, 생존, 철학을 이야기하며 그는 오직 살기위해 살았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주인공은 텐트에 거주하며 천여차례의 절도로 생필품을 구하고, 게임까지 즐기는 등 숲에서 사는 도시생활 일뿐 이사람 또한 자연에의 귀의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는 노르웨이나 뉴질랜드 남 섬 같은 피요르가 만든 깎아지른 장엄한 절벽도 없고, 중국의 장가계 같은 기이한 산 봉오리도 없다. 미국의 그랜드캐년 같은 웅장한 지형도, 용암을 토해 내는 하와이 화산 같은 놀라운 자연현상도 없다.

상상을 초월하는 히말라야의 높은 설산의 비경 도, 불가사의 속에 존재하는 몇 나라에 있는 소금 사막도 물론 없다.

그러나 이 땅은 ‘나는 자연인이다’가 말해주듯 등짝붙이면 어느 곳에나 살아갈 수 있는 세계에서 흔치 않은 땅이다. 어떤 개발되지 않은 오지를 가보아도 공업화 이전의 이 땅의 산이나 들판과 강이나 바다에서처럼 생명으로 가득 찬 모습은 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인문지리학자 남영우 교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시작으로 세계의 인류 문명지를 답사한 후 쓴 『땅의 문명』이란 책에서 지역에 따라 인류가 살아온 방식과 역사가 다른 것은 그 땅에서 살아온 인간 때문이 아니라 땅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역설한다.

부의 편재와 강대국의 탐욕으로 많은 중남미 인들이 모욕과 질시를 견디며 미국을 향해 국경을 넘고, 적지 않은 아프리카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지중해를 건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서로의 살 곳을 찾아 정착한 조상의 뼈가 묻힌 그 땅을 지키며 살고 있다.

깨어나기 전 알 속에서 어미 새의 소리를 애써 기억하는 어린 새처럼, 우리는 이 땅의 빛을, 색을, 소리를. 형상에 익숙해지며 살아왔다. 인간의 지혜가 발전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4계절이 가장 명확한 이 땅.

선산을 지키는 소나무가 로마의 개선문 길 소나무는 물론 세상 어느 나라 소나무 보다 아름다운 이 땅. 살펴봄은 사랑을 낳고 사랑 만이 희망을 잉태한다. 이 땅은 신비나 경이가 아닌 그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땅이라고 지금이 순간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