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기의 지랄발광 이야기

▲ 정채기 강원관광대학교 교수
1995년 초순에 발생한 고교생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지금 `男兒탐구'(남성학․남성연구/ Men`s Studies) 움직임이 활발하다. 반(反)사회적 행동을 하는 남아들의 심리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고 전문가마다 이런저런 진단과 대안을 내놓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러 연구 중 눈길을 끄는 것 하나. 문제아들의 심리를 `남성다움의 신화'와 연결 지은 분석인데, 하버드 의대 심리학교수로 `진짜 남자'의 저자인 윌리엄 폴락의 견해는 이렇다.

“남아들은 어려서부터 사회는 물론 부모 등 주변사람으로부터 강하고 자신 있고 침착해야 한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세뇌 당하고 있다. 그들은 웬만하면 참고 울지 말도록 감정적 절제를 요구받고 있는데 이는 때에 따라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남아들은 진짜 남자가 되기 위해 자라면서 이런 기대에 부응하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고, 남성다움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을 때 열등감 등으로 인해 바로 여러 유형의 과잉행동과 자기학대, 폭력 등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학교를 자퇴하는 남학생들이 부지기수고 여학생에 비해 자살률은 4배, 살인은 10배, 범죄행위 가담은 15배나 높은 미국 청소년의 현주소 역시 남성다움의 신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

요즘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별이 덜하지만 씩씩함, 용기, 힘 등 공격적이고 진취적인 속성의 기질들은 곧 남성다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세상이 바뀌고 보니 여자가 남성적 성향을 띠는 경우는 그래도 활달하다는 정도로 너그럽게 보아주는 분위기지만 남자의 경우 여성적 기질을 보이면 좀 딱하게 취급하곤 한다.

아이와 가장 가까운 부모마저 자녀 특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남자애가 그것도 못하니!' `왜 그렇게 겁이 많니!'라는 식으로 아이를 내모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렇게 보면 남아들 역시 그들대로 사회의 경직된 고정관념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영국의 더 타임스가 `미래의 리더십'이란 기획특집을 통해 제시한 전문가들의 전망을 보면 앞으로는 이런 고정관념이 해소되는 희망적인 시대가 열릴 것도 같다.

미래의 사회는 여러 전문직에서 다양한 기능과 기술을 요할 것이기 때문에 여성성과 남성성의 구별이 의미가 없게 되며, 과거 영웅시됐던 강한 男性像이나 남성다움은 더 이상 이상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보다는 양성의 공존 혹은 이제껏 여성적 기질로 여겨지는 감성적 특성이나 부드러움이 사람들을 이끄는데 효과적이라는 요지다.

아이들은 기왕(기존)의 남성다움을 강요받지 않음으로써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고 사회는 덜 팍팍하게 될 것이니 여러 가지로 좋은 변화라 할 만하다. 중요한 것은 어른들이 변하는 것이다.
상식적인 잣대를 거두고 아이의 특성과 능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갖춰야 하는 것이다. 쉽지는 않지만 그게 아이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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