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진(효천고등학교 1학년)

▲ 이종진 효천고등학교 1학년

TV채널을 돌리던 중 CGV채널에서 ‘광해’를 상영했다. 제목만으로는 방송인 황광희가 생각났지만 부제로 눈이 돌아가며 곧 아니란 걸 알았다. ‘왕이 된 남자’의 무게감은 배우 황광희 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목숨의 위협을 느끼던 광해군은 자신의 대역을 찾아 헤매며 수소문한 끝에 어느 기방에서 본인과 똑 닮은 ‘하선’을 발견한다. ‘하선’은 광대놀이를 시작 하지만 백성을 위하는 진정한 왕으로 거듭난다. 삶이 다할 때까지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매미가 ‘하선’과 어딘가 닮았단 생각이 든다. 끈질기게 떼합창을 해대서 더 그런가 보다.

광해군 8년은 붕당정치가 극심했던 시기이다. 상호 견제를 통해 청렴한 정치를 실현하려는 의도와 다르게 붕당들은 극심한 대립을 이어갔다. 계속된 갈등은 지방 곳곳에도 영향을 미쳤고 한반도 전역에 관료주의가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순조, 헌종, 철종’으로 이어지는 60년 간의 세도정치 시기는 백성과 산짐승을 분간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 같은 부패는 유럽 국가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니꼴라이 고골의 ‘검찰관’은 관료주의에 찌든 1800년 대 제정 러시아를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조선의 세도정치기와 비슷한 시대에 쓰여진 아이러니를 갖기도 한다. 니꼴라이 1세는 30년 동안 철의 군주로서 러시아인을 철두철미하게 억압하고 통제하였다. 그렇기에 니꼴라이의 특명으로 파견된 검찰관은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위협적이며 공포의 대상이었다. 소설 속 시장이 ‘흘레스따코프’가 수도에서 내려왔고 3주간 여관에서 묵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검찰관이라 맹신하는 모습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또한 이 장면은 모든 자본, 권력, 인력 등이 수도에 집중되어 사람들이 중앙에 대한 로망이 얼마나 큰지 잘 알 수 있다.

시장이 ‘흘레스따코프’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의 비리를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부분은 정치인을 꿈꾸고 있는 나를 구역질나게 했다. 공권력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국민뿐이어야 하는데 검찰관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그것도 가짜 검찰관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씁쓸한 웃음을 자아냈다. 주민들을 수탈하면서 그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역설적인지 시장도 알고 있을 거다. 이 대목에서는 우리 지역도 떠올랐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광양’이라고 홍보하면서 세풍단지에 알루미늄 공장을 세우려는 모습도 아이러니하다. 1800년대 러시아에서나 조선에서나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나 공권력 횡령으로 대변되는 관료주의는 우리의 속을 시리게 한다.

그러나 어느 집단이던 간에 예외는 항상 존재한다. 모든 관료들이 굶주린 백성들을 상대로 환곡을 사칭해 고리대를 행할 때, 정약용만은 달랐다.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인 그는 순조 18년에 ‘목민심서’를 저술했다. ‘목민심서’는 제목 그대로 목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이다. 이외에도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을 저술한 정약용은 당시 사회가 직면해 있던 봉건적 질서를 극복하기 위해 바른 말을 아끼지 않았다. 비록 천주교를 가까이 했다는 이유로 말년에 유배를 보내져 자신의 뜻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그의 민본주의 사상을 우리는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변화의 바람이 다시 한 번 일고 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사건과 자유한국당의 동조는 잠자고 있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코털을 건드렸다. 우리들은 일본에게 보여줘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망상에 빠진 일본의 신민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모든 기득권층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진정 백성을 위하는 게 뭔지 알게 된 하선처럼 우리 스스로도 깨어나야 한다.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은 주체성을 지닌 국민, 즉 우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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