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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논란’ 시민의 노래, 폐기 수순 들어가나시민의견 수렴과정 거쳐 내년 초 폐기여부 확정
최인철  |  hwakae72@gycitiz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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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07  10: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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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당공원 친일공덕비도 별도 재정비, 단죄문 검토

유당공원 친일파 공덕비와 친일시인 서정주와 친일작곡가 김동진이 작사·작곡한 광양시민의 노래를 두고 비난여론이 높은 가운데 광양시가 시민의견 수렴 등의 절차를 거쳐 이들을 정비할 계획이다.

광양시는 2일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최근 친일논란이 일고 있는 시민의 노래와 유당공원내 비석 2기에 대해 시정조정위원회, 시의회 의원간담회, 읍면동 의견수렴과 시민대상 설문조사, 시민 공청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최종 정비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광양 시민의 노래’는 1989년 동광양시가 출범하면서 서정주 작사, 김동진 작곡한 곡이다. 1995년 동광양시와 광양군이 통합하면서 ‘동광양’이 ‘큰 광양’으로 일부 가사가 바뀌는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불리고 있는 노래다.

그러나 ‘광양 시민의 노래’를 작사한 서정주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1006인 명단에 수록됐고 작곡가 김동진 역시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면서 논란이 돼 오고 있다.

유당공원 내 공덕비는 2008년 향토문화유산 제7호로 총13기가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나 이 가운데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이자 일제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은 이근호와 일제 강점기 판사를 지낸 조예석의 공덕비가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친일논란에 휩싸였다.

전라남도 관찰사를 지낸 이근호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1006인 명단에 수록됐고 광양군수를 지낸 조예석 역시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광양시는 이들을 둘러싼 친일논란과 비판여론이 비등하자 지난달 16일 시정조정위원회와 같은 달 24일 의원간담회를 잇따라 열어 의견을 청취했다. 이들 조정위와 의원간담회를 통해 시민의 노래는 광양시 공식행사에서 일시 사용을 중지하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당장 오는 8일 광양시민의날 행사에서 사용이 중단된다.

또 유당공원 내 친일논란 비석과 관련해선 단죄문을 설치하고 방향을 달리 세우는 등 재설치 방법을 고려할 계획이다.

광양시 관계자는 “조정위와 의원간담회를 연 결과 친일 논란이 되고 있는 ‘시민의 노래’ 정비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시민 여론 수렴 등을 통해 정비해 나가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며 “시민의 날 행사 시민의 노래 제창에 대해서는 일부 다른 의견도 있었으나 공식 제창하지 않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또 “유당공원 비군의 경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이근호와 조예석 두 인물에 대한 친일행적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폐기보다는 친일행적 기록을 안내문에 명기하고 역사교육 자료로 활용하자는 결론에 따라 문화유산보호관리위원회에서 현재까지 존치해 왔다”며 “다만 이번 기회에 다른 유적비와 별도로 구분해 설치하고 모든 시민이 알 수 있도록 단죄문을 설치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광양시는 더 나가 ‘시민의 노래와 유당공원 내 비석 정비’를 위한 추진위원회도 별도 구성할 방침이다. 추진위 구성은 시의원, 시민 대표, 공무원, 전문가 등을 위촉해 구성하고 시민 설문조사 역시 내년 3월까지 마무리한 뒤 시민 의견수렴 결과에 따라 향후 추진계획 등 수립해 나갈 방침이다.

여기에 더해 광양시 전역에 있는 금석이나 비석을 전수 조사한 뒤 친일과 관련된 경우 친일 잔재를 청산해 나갈 계획이다.

한편 전남도교육청에 따르면 친일잔재가 남아 있는 광양지역 학교는 일제 양식 석물 충혼비 2개교, 친일음악가 작곡 교가 4개교, 백지동맹 등 일본식 표현 생활규정을 사용하는 학교 2곳으로 파악됐다

<친일논란 인물들, 누구인가>

서정주 : 일제에 문학을 판 부끄러운 시인

▲ 서정주

‘국화꽃 옆에서’ 등 서정성 짙은 시를 잇따라 발표하면서 한국문단 내 대표적인 서정시인으로 평가받는 서정주는 그러나 징병 독려 등 일제에 협력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난의 중심이 선 인물이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친일문학을 발표했다. 주로 시·소설·잡문·평론 등을 통해 일제에 협력했다. 다츠시로 시즈오로 창씨 개명한 그는 친일문학지인 ‘국민문학’, ‘국민시가’의 편집에 참여하면서 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스무 살 된 벗에게’, ‘오장 마쓰이 송가’ 등 11편을 발표했다.

이들 작품을 통해 태평양전쟁을 성전으로 미화하고 학병지원 권유, 징병의 필요성과 의미를 의도적으로 드러내 일제의 식민정책에 동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본군 종군기자로 사병의 군복을 입고 취재를 다니기도 한 대표적인 친일 문학인이다.

해방 후에도 군부독재와 유신독재를 찬양하는 글들을 다수 발표했다. 특히 1980년대 초 서정주는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통령 선거 때 전두환 지지연설을 했고 전두환의 56회 생일을 맞아 ‘전두환 예찬시’를 쓰는 등 문학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사용했다는 엄혹한 비판이 따르는 인물이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됐다. 2002년 공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들어 있으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됐다.

김동진 : 민주국 건국 찬양한 ‘가고파’의 작곡가

▲ 김동진

평안남도 안주군 출신. 숭실중학교 재학 중이던 1931년 김동환의 시에 곡을 붙인 ‘봄이 오면’은 그가 작곡한 최초의 곡이다. 또 숭실전문학교 2학년 때 작곡한 이은상 작시의 곡을 붙인 가곡 ‘가고파’를 작곡했다. 가고파는 현재 한국인이 오래도록 애창해 온 노래다. 이 노래는 한국 가곡의 최고 역작이자 가곡 저변 확대에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1938년에 일본 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만주 신경교향악단에서 바이올린 및 작곡을 담당했고 평양 국립심포니 창설 기념지휘를 하기도 했다.

만주에 머무는 동안 관현악곡 ‘양산가’와 ‘제례악’, 교향시곡 ‘만가’를 비롯해 가곡 ‘내 마음’, ‘수선화’를 작곡했다. 1945년 일본 제국이 태평양전쟁에 패전하자 평양으로 돌아와 김원균 평양음악대학의 전신인 국립음악학원 교수를 지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월남했다. 이후 대한민국 육군 종군작가단, 대한민국 해군 정훈음악대 소속창작부장 겸 지휘자로 활동했고 초대 예술원 회원을 역임했다. 이후 숙명여자대학교 강사를 거쳐 1953년 서라벌예술대학 음악과 교수, 경희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그러나 김동진은 1939년 만주의 신경교향악단에 입단해 제1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만주작곡가협회에 가입하고 만주국 건국을 찬양하는 음악을 작곡하는 등 일본 제국의 만주 정책에 협조하면서 친일을 걸었다. 이 때문에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 부문에 선정됐다.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식을 위한 칸타타 ‘민족의 축원’, ‘민족의 행진 등 군부독재를 위해 곡을 남긴 행적도 확인된다.

이근호 : 형제는 물론 代를 이어 친일한 집안

▲ 이근호

이근호는 을사오적인 이근택의 형이다. 충북 충주의 무인 집안에서 태어나 1878년 무과에 급제했고 동생인 이근택이 임오군란 때 충주로 피신한 명성황후의 눈에 들면서 그도 요직에 기용됐다.

1891년에는 평안북도 영변군의 부사로 있으면서 재물을 탐학한 죄로 벌을 받았다가 재기용된 전력을 가졌을 정도로 일찍부터 이재에 밝았다. 1899년 상업은행의 전신인 대한천일은행이 설립될 때 발기인으로 가담했고 종로 직조사 부사장, 광신교역회사 설립 등 기업 활동에 꾸준한 관심을 보였다.

1898년 경무사에 임명됐고 전라남도 관찰사를 거쳐 1906년 육군참모장을 지냈다. 1910년한일병합 조약체결 후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 귀족 남작 작위를 받았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조선 귀족 작위를 받은 동생들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에는 이근호의 작위를 습작한 아들 이동훈도 포함됐다.

이근호의 집안은 세 형제가 작위를 받아 이를 습작한 아들 대까지 모두 여섯 명이 조선 귀족이 된 대표적인 친일 집안이다. 사람들은 이근상 5형제를 5귀五鬼라고 불렀다.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삼형제가 포함돼 있다.

최근 이근호가 친일 행위로 일제로부터 습득한 경기도 화성시와 오산시, 충북 음성군 등의 토지를 되찾고자 하는 소송을 이근호의 손자가 낸 바 있다.

조예석 : 한일합병 공로 한일병합기념장 받은 친일판사

▲ 조예석

조예석은 일제강점기 평양공소원 판사를 지냈고 1912년 한일합병에 공로가 있는 조선관리에게 수여한 한일병합기념장을 받았다는 기록 이외에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다만 일제는 한일합병을 전후 1910년 9월 30일 칙령 제365호 <조선총독부 재판소직원정원령>, 1910년 10월 1일 칙령 제5호 <조선총독부 재판소령> 제령 제6호 <조선총독부 판사 및 검사의 임용에 관한 건> 제령 제7호 <조선인의 조선총독부 재판소직원의 임용에 관한 건> 등을 제정해 조선총독부 재판소의 구성과 인원에 대한 원칙을 정했다.

대체로 조선총독부 재판소는 통감부를 계승하고 일본재판소 구성법에 따르도록 했는데 조선인의 경우 제령 제7호에 따라 제국대학이나 관립전문학교, 조선총독이 지정한 학교에서 3학년 이상 법률학과를 이수하고 졸업한 조선인은 문관고등시험위원의 전형을 거쳐 특별히 조선총독부 검사나 판사에 임용할 수 있도록 했다.

1908년 이후 통감부의 판검사로 임명된 조선인은 약 108명 정도인데 조예석은 당시 평양공소원 판사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는 평양공소원 판사로 1908년 6월 20일 임용돼 1913년 9월 8일 휴직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이때 진출한 판검사에 대해 “법원양성소 출신 가운데 을사조약 강제체결 이후 사법권을 침탈당하자 일부는 자퇴를 불사하였으나 대다수는 저항하기 보다 현실에 적응하면서 관직진출에 급급했다”고 평가했다. 조예석은 후자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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