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여성들의 재능 기부로 ‘언어+문화’ 강의

10년째 활동 중인 지구촌통역봉사단이 모태
행사참여 및 봉사활동 등으로 다문화 인식 개선에 앞장

옛날 마을 공동 우물터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했던 풍경들, 두레, 향약으로 이어오던 공동체의 미풍양속이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산업화와 개인주의, 핵가족화로 인해 사라짐에 따라 사회 양극화와 주민 간의 갈등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 살면서도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안타까워한 지역민들은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민-관 협력으로 이뤄지는 ‘마을 공동체’ 사업도 그 일환이다. 광양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개소 1주년을 맞아 현재 우리 지역에 마을공동체 현황을 안내하는 기사를 시작으로, 어떤 마을 공동체가 있는지,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매주 1곳의 마을 공동체를 찾아 탐방해본다. <편집자주>
 

‘니하오~ 곤니찌와~ 안녕하세요’ 무등2길2 1층에 위치한 지구촌문화공동체 사무실에는 매월 첫째, 셋째 주 토요일 각기 다른 국적의 아이들이 각국의 언어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날은 결혼이주여성들로 구성된 마을공동체 ‘지구촌문화공동체’가 초·중학생 20여명을 대상으로 중국 및 일본어를 가르치고 각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재밌는 시간이 진행되는 날! 이른바 ‘고추장에 버무린 파스타’ 강좌가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진행됐다.


‘고추장에 버무린 파스타’라는 강좌명은 고추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며 파스타는 다양한 지구촌 문화를 대변하는 단어로, 한국 문화와 세계 각국의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한국말이 서툰 엄마가 양육을 도맡기 때문에 유아기 언어노출에 한계가 있어 학습적으로 일반 가정의 아이들보다 뒤처지는 경우가 많으며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가정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일터로 나간 시간에 학원 보다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에 부모와의 소통 부재 등으로 다소 소극적이고 내재된 스트레스가 많은 것이 현실이라는 게 김광애 지구촌문화공동체 대표의 설명이다.
때문에 ‘다국어 가능자’로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경쟁력을 키워주고 엄마의 나라와 언어에 대해 공부하고 부모 자식간 소통할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결혼이주여성들 간의 교류의 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지구촌문화공동체’의 모태라고도 할 수 있는 ‘지구촌통역봉사단’은 지난해 12월부터 회원 자녀들을 상대로 다문화 교육 시간을 마련,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광양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로부터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을 안내받고 올해 처음으로 전남도 마을행복공동체 활동지원사업에 도전, 선정되면서 5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다문화가정이 아닌 일반 아이들도 강좌를 들을 수 있게 참여의 폭을 넓혔다.


다문화가정 아이들 12명, 일반가정 아이들 8명과 다양한 국적의 엄마들이 모인 첫 시간은 어색함의 정적만이 흘렀다.
김광애 대표는 각기 다른 국적의 엄마들과 데면데면한 아이들의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 이날 안재욱이 노래한 ‘친구’의 중국버전을 모두에게 알려줬다.
♪어느 곳에 있어도 다른 삶을 살아도 언제나 나에게 위로가 되준 너 늘 푸른 나무처럼 항상 변하지 않을 널 얻은 이 세상 그걸로 충분해♬
한국어버전과 중국버전을 번갈아 부르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다보니 ‘친구’의 노랫말처럼,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은 눈 녹듯 사라지고, 오랜 시간 함께 한 친구처럼, 아이들도 어른도 마음의 빗장이 풀렸다.


중국어 30분, 일본어 30분을 매주 놀이처럼 익히다보니 어느새 아이들이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언어 교육 뿐 아니라 종이접기, 한지공예, 각국의 음식 만들어 나눠먹기, 각 나라의 예절이나 생활모습 체험하기 등 다채로운 행사로 시간을 꾸리다보니 아이들의 참여도와 흥미도 점점 더 높아졌다.
한번은 한국 파전과 중국전을 만들어 나누어 먹으며 각국의 식문화와 식탁 예절을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아이들이 특히 만족해했다고.


김 대표는 “한국 엄마들이 글로벌 문화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나라의 언어를 학원을 통해 조기교육하고 세계 문화와 관련된 책을 읽히고, 여행을 가는데, 토요강좌에 오면 이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할 수 있다”면서 “참여한 아이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고 자신감이 넘치며 외국인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하다”고 밝혔다.


강의는 치위통(38·중국 출신)씨 등 ‘지구촌통역봉사단’으로 활약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됐다.
종이접기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박혜령(41·중국 출신)씨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종이접기 강사 자격증을 땄다”면서 “종이접기로 각국의 소품 등을 만들어보면서 다문화를 간접 체험하다보면 그 나라에 가보지 않아도 친숙함을 느끼게 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꾸준히 교육하다보니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종이접기 2급 자격증을 따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으며 지난 5월에는 어버이날을 기념, 지역의 한 요양원을 방문해 아이들이 직접 종이를 접어 만든 카네이션을 노인들에게 달아드리고, 직접 준비한 노래, 춤 등의 공연을 선사해 큰 웃음을 건네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4개월여를 함께 지내면서 만든 작품과 사진 등을 전시해 서로의 노력과 성장을 함께 축하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김 대표는 “올해 전남도 지원사업 이렇게 마무리 됐지만 회원들의 사비를 모아서라도 앞으로도 계속 토요 다문화 강좌를 이어나갈 계획”이라면서 “토요 다문화 강좌가 입소문이 나면서 일반 가정에서도 참여하고 싶다는 문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데, 내년에도 공모사업에 도전해 더 많은 아이들과 지구촌 공동체와 함께하는 기쁨은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도 어려운 행정 및 세무 업무를, 한국어가 서툰 이들이 오롯이 감당해 내야 하기 때문에 공모사업을 위해 만들어야 할 수많은 서류들이 이들에게는 넘어야 할 큰 산이라고 했다.


이들은 마을공동체로서 토요강좌를 지속하는 한편 ‘지구촌통번역봉사단’의 활동도 꾸준히 전개할 예정이다.
내년이면 창단 10주년을 맞이하는 전국 유일의 자발적 결혼이주여성단체인 ‘지구촌통번역봉사단’은 중국, 베트남, 일본, 필리핀, 캄보디아, 태국, 인도네시아, 몽골 등 8개 나라 결혼이주여성 50명으로 구성돼 광양시, 경찰서 및 다문화가정지원센터 등에서 명예 민간 통역관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특히 1년에 6개 마을 경로당 등을 방문해 종이접기를 교육하고 각국의 전통 음식을 나누는 ‘찾아가는 치매예방 프로그램 자원봉사’도 8년째 이어오고 있다.


김 대표는 “뉴스에 보도되는 다문화 결혼의 안 좋은 사례들로 인해 시부모나 남편등이 도주 우려 등으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감시 아닌 감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럼에도 이렇게 꾸준히 활동하게 지원해주신 가족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결혼이주여성의 긍정적인 면을 알리고 이미지를 개선시키고 싶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광양 지역 다문화 가정은 962세대로, 적지 않은 비중이며 이들의 평균 출산율이 2-3명이기 때문에 한국의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일조하고 있지만 아직도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 많다”면서 “활동하다보면 어려운 점이 많지만 우리만의 스타일로, 하나씩 해결해가면서 다문화가정과 일반가정이 구분되지 않고 한 데 어우러져 지역 속에 녹아 들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할 테니 많이 응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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