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지 취약점 극복·화합 위해 똘똘 뭉쳐

그 옛날 마을 공동 우물터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했던 풍경들, 두레, 향약으로 이어오던 공동체의 미풍양속이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산업화와 개인주의, 핵가족화로 인해 사라짐에 따라 사회 양극화와 주민 간의 갈등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 살면서도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안타까워한 지역민들은 더불어함께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민-관 협력으로 이뤄지는 ‘마을 공동체’ 사업도 그 일환이다. 현재 우리 지역에 어떤 마을 공동체가 있는지,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매주 1곳의 마을 공동체를 찾아 탐방해본다.<편집자주>

8월, 단지 안 어린이 물놀이장 운영
노래자랑 등 주민 참여 공동체 축제

중마동 성호 2-2차 아파트는 2352세대다. 평균 2명 이상만 거주한다고 치더라도, 거주자만 5천여명에 달한다. 전남에서 동일면적당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해 사는 최대 공동주택 단지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청난 세대수로 구성되다 보니 하루 평균 30가구가 이사를 한다. 손바뀜이 잦다보니 이웃 간 정들기도 전에 헤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소형 평수가 많은 성호 2-2차 아파트는 청년, 1인 가구, 신혼 부부 등 많은 외지인들이 광양에 뿌리를 내리면서 가장 먼저 거치는 관문과도 같은 존재인 듯하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 구성원이 많고 라이프 사이클도 다르며 사람들의 요구도 제각각이기에 주민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도 쉽지 않다. 때문에 성호 2-2 아파트는 지어진 지 13년이 지났지만 공동체 사업을 언감생심, 꿈도 꾸기 힘든 실정이었다. 

그러나 2019년, 올해는 성호 2-2차 주민들에게 조금 특별한 한해다. 입주자대표협의회가 의지를 갖고 자발적으로 나서 마을공동체 사업을 기획, 운영하고 성황리에 주민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주민 화합의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성호 2-2차 입주자대표협의회는 광양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 사업을 통해 900만원(자부담 100만원)을 지원받아 올해 두 차례 ‘주민 대통합’ 한마당 행사를 치렀다.

협의회는 지난 8월 3,4일 이틀간 208동 광장에 대형 워터파크를 만들어 어린이와 주민들에게 신나는 여름 추억을 안긴 것을 시작으로 지난 19일 오후 1시부터는 ‘한지붕 두가족’ 노래자랑을 진행, 남녀노소 모두 흥겨운 잔치 한마당을 펼쳤다.

‘성호 2-2차 물축제’는 이틀간 아동을 포함해 주민 700여 명이 모여 더운 여름 시원한 물놀이를 즐겼다.

협의회는 아이들에게 보다 안전하고 신나는 시간을 선사하기 위해 유아체육 전문 강사 4명을 초빙했으며 손님맞이용 얼음물과 아이스크림 600개를 준비해 나눠주기도 했다. 성호 2-2차 아파트 주민들로 구성된 봉사단체 ‘향기락’ 회원 15명이 행사의 진행과 안전요원으로 활약하면서 손을 더했다.

이날 물놀이장을 찾은 한 어린이는 “맞벌이 하는 부모 때문에 올 여름 못 갔는데 집 앞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며 협의회에 감사한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한 학부모는 “아이들 데리고 워터파크라도 한번 가려면 수 십 만원은 우습게 드는데 공짜로 이동할 필요도 없이 집 앞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으니 정말 반갑다”며 “집이 가까우니 아이들을 바로 씻기고 옷 갈아입힐 수 있어 더욱 좋았다”고 말했다.

단지 내 워터파크를 운영하다보면 시끄럽고 분위기가 어수선해져 민원이 따를 수밖에 없지만, 처음 이 행사를 반대하던 교대근무자나 노인 세대들도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에 이내 불쾌함이 녹아 내렸다는 후문이다.

박병 성호 2-2차 입주자대표협의회장은 “시에서 추진한 물놀이 행사와 날짜가 같아 많은 주민이 참석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많이들 찾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며 “첫 주민 공동체 행사가 성황리에 마무리 되니 자신감이 붙어 다음 행사를 기획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생각보다 많은 주민들이 참여해 높은 만족감을 안겼던 첫 번째 행사가 끝난 후 주민들은 다시 한 번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화합 한마당 행사를 고대했고, 협의회는 이 같은 주민들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지난 19일 ‘한 지붕 두 가족’ 노래자랑 시간을 마련했다.

단지 내 엘리베이터에 ‘노래자랑’ 참가자 모집 홍보 문구가 붙자마자 남녀노소 불문하고 참여 문의 요청이 잇따랐다. 생각보다 많은 관심에 24팀이 참여한 본선 전 예심을 진행하기도 했다.

마을 잔치와도 같았던 시간의 서막은 다문화 가정 아동들로 구성된 사물놀이팀 ‘다누림’이 열었다. 흥겨운 우리가락에 행사가 진행되는 줄도 모른채 집에 있던 주민들도 하나둘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노인들도 생겨났다.

며칠을 연습했는지 옷까지 맞춰 입은 초등학생 저학년들의 댄스공연, 경로당 이용 노인의 트로트 노래, 결혼이주여성의 파워풀한 노래, 연주, 합창 등 연령도, 성별도, 장르도 허문, 그야말로 시골 마을 잔치판이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면서 예정된 3시간이 어느새 끝나버렸다.

이날 노래자랑의 대상은 멋진 댄스를 선보인 조이스오드리 학생에게 돌아갔다. 50인치 TV와 에어프라이기 등 다양한 경품도 주민 손에 하나둘 안겨졌다. 무대 양 옆에는 페이스페인팅, 풍선만들기, 개운죽만들기, 열대어 나눔, 에코백만들기 등 체험 부스도 운영해 행사에 재미를 더했다.

박병 회장은 “동민 체육대회에도 사람들이 나오질 않아 겨우겨우 20여명 정도 동원할까 말까 하는데 이날은 누가 데려오지도 않았는데 주민들 스스로가 모여 흥겨운 자리를 함께 했다”며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런 자리를 꾸준히 마련해 주민 화합의 역사를 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올해 행사는 마무리됐지만 성호 2-2차 입주자대표 협의회는 지난 11일 아파트 단지내에 꾸려진 다양한가족 교류·소통공간 ‘다가온’을 통해 더 많은 공동체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초‧중학생 50여명이 매일 공부방, 도서관, 취미 동아리 모임 등으로 이용하는 ‘다가온’을 아이들이 없는 낮 시간동안 주민들에게 개방, 동네 사랑방으로 활용하면서 재밌는 일들을 많이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박 회장은 “‘다가온’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신 경로당 이용 노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며 “수많은 주민들의 양보와 배려로 공동체 행사가 만들어지는 만큼 이러한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주민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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