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외마을 출신 정채봉 동화작가 마을문화자원 활용
수필 속 실존 인물 이야기, 벽화그리기, 국수 만들기 등 기념사업
만 65세 이상 45명 참여…마을의 산증인들이 재현한 그때 그 시절

그 옛날 마을 공동 우물터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했던 풍경들, 두레, 향약으로 이어오던 공동체의 미풍양속이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산업화와 개인주의, 핵가족화로 인해 사라짐에 따라 사회 양극화와 주민 간의 갈등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 살면서도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안타까워한 지역민들은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민-관 협력으로 이뤄지는 ‘마을공동체 사업’도 그 일환이다. 현재 우리 지역에 어떤 마을공동체가 있는지,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매주 1곳의 마을공동체를 찾아 탐방해본다<.편집자주>

 

 

마을공동체 사업의 주된 목적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함이지만 마을의 역사와 고유 문화 자원을 발굴해 관광, 산업 자원으로 연계해 마을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도 있다.

읍내경로당에서 전남도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으로 진행한 ‘아름다운 사람들의 뒷모습’ 사업은 이같은 목적에 딱 들어맞는다.

만 65세이상 45명의 동외마을 주민들이 함께 하는 읍내 경로당은 광양읍 동외마을 출신 ‘정채봉 동화작가’라는 소중한 마을의 문화자원을 활용, 정채봉 작가와 같은 시대(1960년대)를 살았던 읍내 사람들을 조명하고 그를 통해 주민들의 유대감을 형성하며 마을공동체의식을 회복하고자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박주일 동외마을 이장은 “매일 경로당에 모여 TV보고 수다떨며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마을 공동체 사업이 있다는 얘길 듣고 지난 1월 경로당에서 회의를 열었다”며 “11명 정도가 참석했는데, 한 주민이 마을 출신인 ‘정채봉’을 테마로 하자고 제안했고 동의해 사업을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주민들은 “정채봉이라는 사람에 대한 기억은 많이들 했지만 그 사람이 쓴 책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책읽기와 경로당 외벽에 책 읽은 내용을 그리는 벽화 작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또 한 주민은 “정채봉 작가 고모가 우리 마을에서 국수집을 했는데 아주 맛있었지, 우리 그때 그 국수 한 번 만들어 먹으면서 그 시절을 추억해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모아 읍내 경로당 구성원들은 곧장 광양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를 찾아 방법을 문의했고, 지원센터의 자문을 통해 ‘아름다운 사람들의 뒷모습’ 세부 사업을 확정했다.

‘정채봉 작가’를 추억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를 알아야 했다. 주민들은 오후 시간 경로당에 삼삼오오 모여 정채봉 작가의 ‘아름다운사람들’, ‘초승달과 밤배’ 등의 작품집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 작가와 인연이 있는 복향옥씨, 정회기 마을공동체 센터장, 하동호 서각가, 이은미 화가 등을 초청해 그의 작품에 대한 설명과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이렇게 쌓은 정채봉과 관련한 지식을 바탕으로 지난 5월 7일부터 경로당 외벽에 벽화를 그리는 작업이 시작됐다.

벽화는 정채봉 작가의 책에 나온 인물과 소재들로 꾸몄다. 어린왕자를 읽고 동화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정 작가의 삶을 투영해 어린왕자를 그렸다. 작품집의 제목이기도 한 초승달과 밤배, 별들은 노인들이 직접 자르고 색칠해 붙였다.

그의 작품에 등장한 도장방아저씨와 우체부 정쌘 아저씨, 이균영씨 등도 그렸다. 벽화 하단의 꽃은 ‘정채봉’의 이름과 연관해 채송화, 봉선화를 그려 넣었다.

자신들의 손에서 멋진 예술 작품이 탄생해가는 모습에 함께 한 노인들도 행복해했다.

강추자 어르신(79)은 “색칠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었는데 해보니 애들마냥 신나고 재밌더라”며 “지나다 벽화를 보면 그리 뿌듯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삭막했던 경로당 외벽이 알록달록 벽화로 꾸며지니 어엿한 ‘포토 스폿’으로 재탄생했다.

어르신들이 시작한 벽화사업이 내년도 광양시가 추진 중인 원도심 벽화 사업과 연계되면 오랜 기간 광양읍의 문제가 됐던 원도심 활성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된다.

무더운 여름에는 주민이 제안했던 ‘국수만들기’ 시간도 진행됐다. 읍내경로당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둘러 앉아 국수를 만들어 먹으면서 ‘아름다운 사람들’ 사업과 정채봉, 마을의 옛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시간이었다.

박주일 동외마을 이장은 “할일 없이 시간만 보내던 노인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자신감과 삶의 활력이 생기더라는 얘기를 많이들 하신다”며 “앞으로도 늙어서 할 일이 없다고만 할 게 아니라 우리들끼리 스스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찾아 하면서 지역 발전에 미약하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마을공동체 사업을 잘 마칠 수 있게 도와준 정회기 센터장 등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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