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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을 향해…….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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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03  11: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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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나는 요즘 꼼짝없이 읍내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

한동안 집 주변의 산이든 언덕이든 가리지 않고 힘차게 오르내리던 내가 어쩌다 보호대에 의지하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는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내가 하루 종일 활동 할 수 있는 공간이라야 눈앞에 보이는 병원 복도를 바람에 흔들리듯 겨우 걸어 다닐 수 있을 뿐이다.

지금도 내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이 잘 믿어지지 않지만 어떻게든 이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는 생각에 골몰하곤 하는데 마땅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지곤 한다.

나는 단지 경사가 가파른 산에서 내려오다 큰 바위에 무게 중심을 옮겨 발을 디뎠을 뿐인데 그 결과가 가져온 파장이 너무 크다.

그때 내가 발을 디뎠던 바위는 생각과는 달리 쉽게 흔들렸고 균형을 잃은 내 몸은 아래로 고꾸라졌는데 뒤따라 굴러온 바위가 내 몸을 덮쳤다.

바위 사이에 몸을 끼인 채 나는 한동안 꼼짝할 수 없었고 몸은 감당할 수 없는 바위의 무게에 짓눌리고 말았다.

점차 혼미해지는 의식을 붙잡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던지…….

어찌어찌하여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기적의 힘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살아 돌아오고 보니 다리는 여기저기 깨어지며 흘러내린 핏자국이 흥건했고 무릎 연골이 심하게 골절되어버렸다.
그나마도 내겐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었다.

멀리 입원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백운산은 표정을 지운 채 덤덤했다.

그렇게 큰일을 치르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한 모습이어서 야속하기도 하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탓인지 그동안 나와의 사이마저 벌어져 버린 듯 먹먹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동안 나 없이도 안녕 할 수 있을 것인지 속으로 비아냥거렸지만 몰려드는 궁금증 때문에 마음은 이미 산 깊은 곳을 접어들고 있었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솟고 투명한 소리를 품은 새들이 힘차게 비상하고 바위틈마다 나이를 알 수 없는 고목들이 하늘을 떠받치듯 서 있는 곳.

다가갈 때마다 희망이고 기쁨이었는데 이제는 그곳으로 다시 오를 자신이 없어져 서글프다.

그동안 나는 자유롭게 산과 하늘을 가르는 한 구역에서 저마다 일가를 이루며 살아가는 나무들과 힘차게 호흡하며 살았는데 지금은 미지근한 실내 공기에 휩싸여 있을 뿐이다.

몸을 다치고 보니 산과 세상의 중심에 살고 있다고 믿었던 내가 변방으로 훌쩍 밀려나버린 기분이 든다

불편해진 몸을 이끌고 복도나 병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초점 없는 눈으로 도시풍경을 바라보며 환한 대낮에도 수시로 잠을 청하는 생활에 점차 익숙해진다.

이러다가 너무 쉽게 나이 들어가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수시로 내 주위를 맴돌곤 한다.

부서진 뼈가 붙고 상처에서 새 살이 돋아날 때까지 하릴없이 병실을 어슬렁거리며 기다리겠지만 예전처럼 산을 가까이 대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오늘도 입원실에 켜진 티브이는 꺼질 줄 모른다. 종일 흘러나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과 가벼운 웃음이 집을 떠난 사람들의 적적함과 무료함을 달래준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나는 가끔 화면을 통하거나 창밖을 통해 그날의 날씨를 가늠한다.

집이었다면 아침마다 앞마당의 온도와 공기를 몸으로 느끼며 그날의 할 일을 생각했을 텐데, 영상과 유리창으로 보이는 날씨는 무미건조한 사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밖은 여전히 바람이 불고 흐리고 춥고 비가 내리고……. 산촌에서 지낸 그 많은 변덕스러운 날씨를 어떻게 견디어냈을까? 지금도 나는 아무 대책 없이 다가오는 시간을 참고 기다리고…….

병원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시간마저도 분명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 믿고 싶다

내 앞에 있는 시간들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은 고통에 가깝다.

시간은 흐르면서 나의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하고 까맣게 딱지가 지고 허약해진 마음을 단단하게 해서 다시 처음의 상태로 복원해내길 기대한다.

그런 기대마저 사라진다면 지금까지 지녀왔던 시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깨어지고 병원 방마다 가득 들어찬 사람들과 나는 삶을 구걸하는 슬픈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느 소설가가 표현했던 누구나 홀로 선 나무라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뒤섞이며 땅 위에 살고 있지만, 그 누구든 혼자서 길을 가야 하는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나는 지금 쓸쓸하게 누워있지만 말끔하게 치유된 심신으로 다시 설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한다.

아직도 자리에 누우면 간혹 나를 향해 굴러오는 바위가 보인다.

내겐 쉽게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되었지만, 그 위로 숨겨진 듯 어리는 풍경들도 나타난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가지를 내민 고목들의 육중한 몸통과 산 중턱에서 땀을 식히면서 바라본 수채화 같았던 산하, 어느 날 10여 명에 이르는 산돼지 일가족의 행렬을 마주치며 나무 뒤에서 숨죽이며 바라보았던 순간들, 맹수였지만 가족과 함께라면 그 길이 몹시 평화롭고 성스럽기까지 했던…….

어쩌면 나도 잠시 세상 한 곳에 떠돌다 돌아가는 하찮은 동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끼쳐왔다.

멀리서 단순한 기억만으로 저장해두기엔 내가 그동안 산에서 보았던 광경이 너무 찬란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산을 다시 올라야 한다.

내가 지나온 오랜 흔적들과 가슴을 뛰게 했던 순간들이 머물러 있는 곳을 다시 찾아 아직 나에게 이상 없음을 알려야 한다.

그것만이 내가 다시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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