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개화기 시절 고종께서는 서양인들의 테니스 경기를 관람하며 “귀빈들이 저렇게 힘든 일을 아랫것들 시키지 않고 어찌 직접 하는고?” 하고 혀를 찼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삶이 너무 고달파서 일까. 힘이 몸 안에 들어오는 것을 ‘힘들다’하고 몸 밖으로 나가는 것을 ‘힘난다’고 하며 힘을 들이는 것을 염치없는 불청객 정도로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한다.

동양 사상에는 논어 등 어떤 고전에도 힘쓰는 일을 숭상 하는 구절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20세기 벽두 약육강식, 적자생존, 우승열패 등의 서양 사상과 함께 각종 체육경기가 유입되면
서 오랜 관념이 무너지고 공원, 강변, 산자락은 물론 가정에서까지 운동기구들이 비치되고 운동은 우리들의 일상이 되었다.

나이 들며 나는 정신보다 몸을 믿는 편이다. 마음은 변화가 심한 편이나 몸은 불편이 늘면서도
꾸벅꾸벅 내 생각에 따라주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비나 눈이 오거나 무덥거나 매우 기온이 차면 뒷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든다. 나 또한 쉬고 싶을 때도 있다.

어린 시절 공부가 그러하듯 힘들고 귀찮은 일도 꾹 참고 몇 달 몸을 버릇들이면 뜻밖에 재미
가 생겨난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혼자 걸으면 혼자만의 충만감도 경험할 때가 있다. 공을 넣는 사람이 꼭 공을 넣는다거나 “이겨본 사람이 다시 이길 수 있고 지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라는 거창한 주장은 아니라도 언제부터인가 산행은 나에게 작은 성취의 기쁨과 긍정적 사고, 조용히 찾아오는 충족감, 관절을 보전하는 노하우 등 비밀스럽게 감추어두고 혼자 슬며시 경험하는 보물이 되었다.

유튜브를 가득 메우는 정신건강과 몸에 좋다는 조언들도 ‘꿰어야 구슬’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로 완성됨을 확인해 가는 것이다. 말로서는 설명할 수 없고 오직 경험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체험 같은 것 말이다. 두 시간의 산행은 혈당을 낮추어주고, 숙면과 쾌변 식욕에 도움을 주고 불편함과 몸의 통증을 줄여준다.

무엇보다도 가장 어려운 노년의 평정심을 갖게 해준다. 7여 년간 감기 걸리지 않고 병원 가는 일 없게 해주었고, 가족들 걱정하는 일 없게 해주고 있다. 곳곳마다 정이 들며 추억도 쌓여간다. 앙증맞은 별꽃, 제비꽃이 피어나는 봄의 황톳길. 꿩이 수풀에 새끼들을 감추어두고 곧 잡힐 것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나를 다른 곳으로 유인하던 초여름의 숲속 길. 소나무와 참나무 잎이 소복이 싸인 걷기 좋은 가을 길과 적당이 눈이 밟히는 겨울길. 열 살 손자녀석이 시를 지었다며 들려주었던 어디 쯤 길도 생각이 난다.

단풍이 하는 말/ “빨강이 최고야”/ 은행이 하는 말/ “노랑이 최고야” / 푸른 하늘이 하는 말
/ “파랑이 최고야” / 가을이 하는 말 / “다! 최고야!!” 여덟 살 손자녀석도 뒤질세라 한말 보탠다.

“허벅지가 조금 아프기는 한데 높이 올라오니 양치질할 때 같은 기분이 들어요” 여덟 살 외손자 녀석도 이어받는다. “할아버지 낙엽을 밟으니까 음악소리가 나요” 집에 있었으면 텔레비전이나 종일 보거나 게임이나 하며 놀았을 아이들 입에서 대견한 소리들이 쏟아진다. 정말 기쁘다. 한말 한말이 일 년은 즐겁게 살 거리가 되어 준다.

자연은 손자들에게 높이 오르면 멀리보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태곳적 이래로
착함과 지혜와 부지런함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 용돈 때문에 아빠로서 말발이 서던 때 고등학교와 대학 다니던 일남 이녀 자식들, 집사람과 같이 나는 매년 지리산 종주를 강행하였다. 건강한 자식들 셋을 앞세우고 집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뒤에서 지켜보는 즐거움은 내 일생에서 가장 보람되고 기쁜 추억으로 간직되고 있다.

4년 후 손자 네 명이 중학교를 들어갈 때 나는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고 있다. 그때 내 나이 77세, 2013년 일본인 산악인 미우라 유이치로는 80살에 8848m 에베레스트산도 올랐다 하지 않은가. 나는 습관처럼 되뇌는 다짐이 있다. 용기는 어려운 실행 속에서 생겨나며 그 어려움 속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것을, 가장 맛있는 물을 맛볼 수 있는 사람은 부나 명예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장 갈증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다.

손자들과의 지리산 종주 계획은 연골을 더 주의 깊게 관리하고, 변함없이 산에 올라야 하며, 내 몸을 관리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이유와 새로운 존재 의미가 되어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추월을 당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젊은 시절과 달리 꾸준히 산행을 하여도 몸이 가벼워지지를 않는다. 아직 두 시간 산행 동안 쉬지는 않지만 쉬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도 있다. 스쳐가는 사람들과의 의례 주고받았던 반가운 인사도 현저히 줄고 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지만
움직임과 성실함으로 하나의 점들을 이어 조금은 예측 가능한 그래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죽음도 우주적 변화의 소중한 원칙이라면 몸과 마음이 고착되지 않도록 변화의 흐름 위에 올려 태우고 싶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