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야채 길러 김장 & 삼겹살 파티
전 연령대가 함께 하는 ‘가죽공예’ 교육도
“정다운 마을 인심, 부녀회와 함께 만들어”

그 옛날 마을 공동 우물터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했던 풍경들, 두레, 향약으로 이어오던 공동체의 미풍양속이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산업화와 개인주의, 핵가족화로 인해 사라짐에 따라 사회 양극화와 주민 간의 갈등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 살면서도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안타까워한 지역민들은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민-관 협력으로 이뤄지는 ‘마을공동체 사업’도 그 일환이다. 현재 우리 지역에 어떤 마을공동체가 있는지,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매주 1곳의 마을공동체를 찾아 탐방해본다.<편집자주>


 

“김장은 자고로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품앗이하는 게 전통이죠! 함께 키워, 함께 나눠먹는 맛, 잊고 살았는데 아파트에서도 할 수 있다니, 옛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다들 즐거워했습니다.”

태영1차 부녀회는 지난해 하반기 광양시 소규모 마을공동체 2차 사업팀으로 선정됐다. 윤은자 태영1차 부녀회장(통장)은 다른 아파트에서 마을공동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꼭 도전 해보고 싶어 마을공동체 지원센터를 직접 찾았다.

이미 모집이 끝난 상황이었지만, 윤 회장은 지원센터에 혹여나 다음번에 공모가 진행되면 꼭 좀 알려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했고, 다행히 상반기 지원팀 가운데 중도 포기자가 나오면서 하반기 2차 사업에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어떤 사업을 진행할지, 이미 윤 회장은 계획이 다 있었다. 윤 회장은 자신이 어릴 적 마을에서 다함께 배추를 심고, 수확해 김장을 담궈 나눠먹은 기억을 되살려 아파트 주민들과도 함께하는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윤 회장은 평소 자신의 뜻을 잘 따라주던 천승희 총무 등 부녀회원 10여명과 함께 ‘정도 나누고, 김치도 나누고’라는 이름의 김장 나누기와 ‘지글지글 삼겹살 데이’ 등 두 차례 행사를 진행했다.

김장 행사는 윤 회장의 시골밭에 배추 300포기와 마늘, 고추, 파 등의 김장 재료를 심는 일부터 시작됐다. 부녀회원들과 자원봉사를 자처한 입주민들과 함께 거름도 주고, 수확도 하며 김장 행사의 토대를 마련했다.

11월 말 예정된 본격적인 김장행사에 앞서 입주민간 얼굴도 익히고 가을밤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지난해 10월5일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아파트 내 체육 공원에서 삼겹살 파티도 개최했다.

삼겹살 100kg을 준비하면서 부족한 재원과 일회용품 등은 상가와 여러 입주민들의 후원으로 마련했다. 김치와 밥, 떡도 준비하고 쌈 채소는 김장 행사를 위해 심은 재료와 단지 내 텃밭에서 수확한 재료들도 마련했다.

태영 1차 아파트 508세대 전원이 참가하길 바라며 며칠 전부터 단지 내 방송과 현수막, 게시판을 활용해 홍보했다.

그 결과 아파트가 만들어진 이후 최고로 많은 인원이 한 자리에 모였으며, 입주민들은 각각 반찬과 담금주 등 본인들이 준비한 음식도 들고 나오며 한바탕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말 한번 섞어보지 못했던 이웃들은 이날 행사로 절로 친구가 됐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으며 신나게 뛰놀았고, 어른들은 언제 어색했냐는 듯 금방 친분을 맺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는 서로를 보면 먼저 인사를 건네는 문화가 형성됐다.

광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손 맛’ 좋은 부녀회의 음식을 맛본 입주민들은 연신 감탄하며, 본인도 다음번 김장행사에서 할 일이 없냐며 앞으로 아파트 행사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삼겹살 파티의 후광에 힘입어 11월23일 진행된 ‘김장 나눔 행사’에는 배추 절이고 양념을 준비하는 과정에 더 많은 입주민들이 자진해서 손을 보탰다.

김장 행사는 부녀회에서 미리 준비한 양념과 절임 배추를 입주민들이 직접 버무려 챙겨 가는 식으로 진행됐다.

입주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기 위해 1명당 2쪽씩 가져갈 수 있게 했다. 현장에 나오기 힘든 결손 가정과 노인, 장애인 세대 등에게는 부녀회에서 마련한 통에 1통씩 꽉 채워 가가호호 방문 전달했다.

한 입주민은 “좁은 아파트에서 김장 한번 담으려면 힘든데 부녀회 차원에서 준비해주시고 야회에서 함께 하니 떠올리기도 싫은 중노동인 ‘김장’이 정말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며 “아이들과 아빠도 함께 하니 어디서 돈 주고도 경험 못할 값진 추억을 만들게 돼 행사를 준비해주신 부녀회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손도 많이 가고 힘든 음식 나눔 행사를 두 차례나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태영 1차 부녀회가 마을공동체 사업에 참여하기 전부터 바자회를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수익금으로 음식나눔행사를 꾸준히 진행했던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윤 회장과 천 총무는 “뼈해장국, 약밥, 김밥 등을 만들어 노인정과 주민들과 나눠먹었던 게 맛있기로 소문이나 음식 나눔 행사를 치르면 공무원과 시의원들, 타 아파트 주민들까지도 놀러올 만큼 판이 커졌다”며 웃음지어 보였다.

태영1차 부녀회는 올해도 마을공동체 공모사업 씨앗 단계에 선정됐다. 올해는 입주민들과 무언가 함께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노인, 청소년, 중년 등 3분야로 나눠 가죽공예 강좌를 진행할 예정이다.

윤 회장은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통장 일을 하다 보니, 부녀회원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한마음 한 뜻으로 다들 더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애써줘 감사한 마음”이라며 “우리가 고되고 바쁠수록 입주민들이 더 살기 좋은 태영1차 아파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 재밌고 행복한 마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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