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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 기자의 詩가 있는 월요일.5기형도 빈집
최인철  |  hwakae72@gycitiz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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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24  22: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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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시인 기형도
- 1960년 경기 연평 출생
-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안개’로 등단
- 윤동주 문학상 외
- 시집‘ 입속의 검은 잎’ 출간
- 1989년 3월 사망(향년 29세)

1989년 3월 7일 서울 종로에 있는 한 심야극장에서 한 젊은 청년이 숨진 채 발견됐다. 퀘퀘 한 먼지가 떠도는 극장은 흡사 오래된 무덤처럼 음험하고 괴괴한 기운이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죽은 자의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죽은 자는 3월 9일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혔다.

한 소설가는 죽은 자의 추도식에서 이렇게 그를 보냈다.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인간으로도 축생으로도 다시는 삶을 받지 말아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누런 해가 뜨고 흰 달이 뜨더냐”

젊어 죽은 자의 이름은 기형도였고 나이는 겨우 스물하고도 아홉이었다. 그리고 두 달여 뒤 인 1989년 5월 그날 죽은 자의 시집 <입속의 검은 잎>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그는 죽기 전 그동안 써 놓은 시편들을 모아 시집 출간을 준비 중이었으나 시집은 그의 유작으로 남았다.

90년대 학번을 가진 문학도라면 기형도를 빼놓고 문학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 은 일이다. 무엇보다 젊어 죽은 그의 죽음과 맞물려 그가 시를 통해 드러내는 암울한 현실은 다른 시인의 목소리와는 달리 폭력적인 일상으로 인한 삶의 무너짐을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새로운 시적 지형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어둡고 짓이겨진 80년대를 살아남아야 했던 역사적 경험을 가진 청춘이라면 숙명처럼 끌어 안고 살아야 했던 부채의식과 여전히 한쪽 날개를 빼앗긴 채 숨죽여 살아내야 하는 현실에 대 한 저항,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강력한 거부가 그의 시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나 그의 시는 당시 시인들과 달랐다.

기형도의 시는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다소 공격적인 방법으로 드러내 놓고 분석하는 데서 시작된다. 무엇보다 가난한 집안 환경이다. 대개 가난의 모습이 그러하듯 그에게는 아픈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진 장사하는 어머니가 존재한다.

그리고 일찍부터 삶의 일부를 포기한 채 그 가난의 길목에 서서 궁핍한 가정을 위해 아직은 어린 누이가 공장을 다니는 우울한 나날의 기억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어두웠던 어린 시절과 성장기의 아팠던 풍경들은 그의 시 기저를 이루는 화수분이다. 기형도는 이 기억을 포장하지 않고 툭 던져놓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 탓에 그의 시는 우울과 비관으로 점철돼 있다. 오랜 장마기에 접어든 것처럼 축축해진 채 때로는 분노를 넘어 처연해진 현장을 서성거린다. 애써 서정의 끄트머리를 잡고 애를 쓰거나 불의한 시대의 현장 속에 뛰어들어 한 자루의 칼이 되고자 했던 이들이 양분했던 당시 문학판에서 그는 그 중간 어디쯤을 헤매고 있었다.

가난으로 얼룩진 성장기 개인적인 아픈 기억은 박정희의 몰락과 또다시 군사독재가 연장되던 당시 암울했던 한국 현대사와 맞물려 절망과 비관의 그늘이 가득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시 인은 야만과 기만으로 억압을 일삼던 정치 현실과 그 폭력적인 일상을 묵묵하게 견디며 살았던 민중 다수는 물론 시류의 편승하는 이들을 경험의 일상으로 표현함으로써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의 시는 극히 비관적일 뿐 어떠한 희망도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시인 역시 어떤 희망을 예측할 수 없던 세계에 갇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를 옆에서 지켜봤던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 기괴한 기형도의 시를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정리하고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 명명했다. 기형도의 시는 폐허만을 보여준 채 끝을 맺고 있으나 그가 말하지 않는 무언가, 그가 바라보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던 까닭일 터다.

시 ‘빈집’은 기형도 대개의 시와 다른 외향을 지녔다. 언뜻 비추어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것 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기형도에게 사랑이나 이별 역시 여전히 ‘갇힘’이다. 그래서 ‘장님 처럼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는 사람 역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다. 여기서 갇힘은 단절 의 다른 말이다. 그리고 이후의 세계는 보여주지 않는다. 비관으로 점철된 기존 그의 시 성향 과 연을 놓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가엾’ 다는 위로 역시 단절된 혹은 단절시킨 자신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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