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인철 기자

정치인의 언어는 파장이 크다. 국민을 슬프게도 하거니와 분노를 자극해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의 언어는 정제되고 무거워야 한다. 언어의 품격이 바로 정치인의 품격이다. 물론 말은 소통이기에 상대에 대한 예의는 필수 덕목이다.

말은 의사소통과 대화의 매개체다. 즉 상대방이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시(詩)가 있듯 언어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자연에 조화가 있는 것처럼 말에도 조화가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상대와의 조화다. 더구나 인생의 곱고 품위 있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죽일 수도, 밝게 꽃피울 수도 있으니 신중하고 진중할 일이다.

격언에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말이 있다. 세 번 생각한 연후에 말하라는 뜻이다. 이는 일반인에게도 통용되나 정치인이라면 필히 새겨들어야 하는 채근이다. 정치인의 언어 품위는 그의 정치 인격과 정비례하기 때문이며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단초가 되는 탓이다. 그 정치인을 선택한 유권자 역시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참고할 가치가 없다”

송재천 의원의 시정 질문에 바투 내뱉은 정현복 시장의 말이다. 송 의원은 이날 정 시장의 핵심공약 가운데 하나인 가칭)가족형어린이테마파크 관련 시정 질의를 이어갔다.

다소 생뚱한 면이 없진 않았으나 강원 레고랜드 사례를 들어 전문기관이 참여해야 한다는 요지의 질문을 이어가며 “이들 자료를 참고할 뜻이 있느냐”고 물었고 정 시장은 곧바로 위와 같이 답했다.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송 의원은 적잖이 당황한 듯 얼굴이 붉어졌다.

시정 질문 성격상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가치 없다” 지켜보는 이가 다 무안해질 만큼 낯선 단어였다. 단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을 만큼 시간은 짧았고 정 시장의 언어는 매우 과단성 있고 엄격했다기보다 그냥 너무 차가웠다.

100만부 판매기록을 세우며 밀리언셀러로 등극한 ‘언어의 온도’ 저자 이기주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 마디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났다면 ‘말 온도’가 너무 뜨거운 것이라고 한 진단은 이 풍경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덧붙여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어느 중간용역보고회 자리다. 중간보고회 자리였던 만큼 각계의 의견 수렴은 필수다. 그 의견을 수렴해 최종보고회가 만들어지는 만큼 다양한 의견은 더 나은 결과도출을 위해 권장돼야 한다는 게 상식에 부합한다. 더구나 “미래 발전상을 내다보고 보고서가 만들어져야 한다”거나 “새로운 대안 발굴이 미흡하다”는 참석 시의원들의 발언은 너무도 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나 정 시장은 이런 지적이 매우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중간보고서 내용을 수용하라는 듯 ‘재론 불가’ 입장을 연이어 밝히는 등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무슨 일인지 단단히 화가 난 듯 보였다. 이날 회의는 어느 의원이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개운치 않게 끝이 났다. 이날 정 시장의 언어는 차별과 배제의 언어였다.

말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게 아니다. 가슴에도 새겨진다. 마음 깊숙이 꽂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이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상처를 받기도 한다. 더구나 정치인의 언어라면 그 영역이 훨씬 넓게 확장된다는 측면에서 정제돼야 하고 최소한 상대에 대한 존중을 갖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말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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