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끝 - 이성복

그 여름의 끝
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시인 이성복
- 1952년 경북 상주
- 1977년 <문학과 지성> 시 ‘정든 유곽’ 발표
-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외 다수
- 소월문학상 외 다수

초기 이성복 시는 오래도록 내려왔던 한국 시문학 양식을 파괴하는 데서 시작됐다. 기승전결이라는 서사적 구조를 철저하게 무시되고 대신 무의식의 자아가 의식의 흐름을 제어하지 않은 채 거스르지 않고 무작정 따라간다. 일종의 배설에 가깝다.

무거운 시대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정화하는 따위의 장치 역시 제거된 채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는 내내 어딘가 불편하다. 마치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는 수학 문제를 붙들고 있는 기분이다. 영 개운치 않다.

청년 이성복의 시는 그래서 먼저 이해를 하기 전에 시 전체가 주는 인상에 주목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앞 뒤 맥락을 살피지 않고 그냥 주절거리듯 내뱉은 시어들을 분석하려 들면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저 주절거림을 따라가야 한다. 그러하지 않다면 시를 처음 대했을 때 느꼈을 당황은 쉽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행의 지그재그식 배열, 거꾸로 끼워 넣은 활자, 말장난에 가까운 말의 생략과 반복에다 이질적인 이미지의 병치는 그렇다 치고 행간마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개새끼, 씨발 놈, 씹 새끼, 옘병할 놈, 좆이 서지 않는다 등등 욕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그것으로부터 익숙함을 얻어야 하는 일은 그의 시를 읽는 또 다른 숙제다.

그를 가르쳤던 문학평론가 김현은 그의 시를 두고 “이미지들은 분수처럼 솟구치고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고 또 멈출 줄 몰랐다”고 평했다. 또 김현은 그의 시에 대해 “따뜻한 비관주의”라고 했고 시인 황동규는 “행복 없이 사는 일의 훈련”이라고 규정했다.

문학판에서는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중간쯤 되는 영역인 해체주의 안에서 그의 시를 분석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성복은 시 하나가 주는 단상에 주목하지 않으면 도무지 손에 잡기 힘든 시들이 대부분이다. 단어와 문장, 그 문장 다음의 문장을 연상에 주목하는 게 중요하다. 바로 이 연상이 주는 의식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시의 주제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당신은 이성복 시의 단상이 주는 효과를 이해하게 될 터이다. 무언가 확정 혹은 단정 짓는 대신 그 배설을 통해 이성복이 말하는 것은 상처와 아픔 혹은 부조리다. 그이 시를 읽다 보면 어차피 사회학적인 접근을 통해 쉽게 이해되지도 않고 그리하여 쉽게 치유될 수도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가슴 밑바닥 어딘가가 끄덕이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시 ‘그 여름의 끝’은 서사를 파괴하지 않고 비유와 상징으로 써 내려간 몇 되지 않은 그의 초창기 시 가운데 하나다. 꽃 핌과 꽃 짐 사이에 있는 시인의 안타까운 시선을 쉽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탓이다.

꽃 핌에 마음을 두는 일이 오히려 절망을 불러일으키는 역설을 통해 무덥게 달아올랐던 ‘그 여름’ 청춘의 시간이 붉게 아팠음을 말하면서도 꽃 짐의 시절이 다가와 그 절망이 끝났음을 말하는 가을의 길목에선 시인은 또 그렇게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처럼 흘러간 청춘을 바라보는 일 역시 처절하고 아프다는 것을 아주 작고 느린 목소리로 이르고 있다.

붉디붉고 또한 치열했던 청춘, 그 청춘을 살았던 당신도 잠시 뒤돌아서서 상처 입은 당신의 청춘을 가만 보듬어 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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