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다의 꿈 - 박노해

시다의 꿈
박노해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밋빛 꿈을 잘라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둑 잘라
피 흘리는 가죽 본을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아직은 시다
미싱대에 오르고 싶다
미싱을 타고
장군처럼 당당한 얼굴로 미싱을 타고
언 몸뚱이 감싸줄
따스한 옷을 만들고 싶다
찢겨진 살림을 깁고 싶다
떨려오는 온몸을 소름 치며
가위질 망치질로 다림질하는
아직은 시다,
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으로
찬바람 치는 공단거리를
허청이며 내달리는
왜소한 시다의 몸짓
파리한 이마 위으로
새벽별 빛나다

※시인 박노해(본명 박기평)
- 1956년 전남 함평군
- 1983년 <시와 경제> 시‘ 시다의 꿈’ 등단
- 1991년 사노맹 사건으로 사형선고
- 1992년 포에트리 인터내셔널 로테르담재단 인권상 외
- 시집 노동의 새벽 외 다수

‘시다’는 일하는 사람 옆에서 그를 돕는 사람을 일컫는 일본어 시다바리(shidabari)의 준말이다. 쉽게 말하면 보조자인데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독립된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가 되기 위한 숙련과정을 밟고 있는 노동세계의‘ 을’이다. 노동자 취급도 못 받는 노동자인 셈이다.
당시 노동을 노래하던 시인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스스로 노동자가 된 이들이었다.
대학을 다니다가 사상적 변혁을 현장을 통해 확인하고자 노동자의 벗이 된 그들과는 달리 기평은 살기 위해 노동 현장을 벗어날 수 없는 노동자였다.
1983년 기평은 황지우와 김정환, 김사인 등이 꾸린 동인지 <시와 경제> 2집에‘ 시다의 꿈’ 등 여섯 편의 시를 발표하며 시인의 칭호를 갖게 된다. 하지만 얼굴은 철저하게 베일 속에 가린 채였다. 그리고 기평이라는 이름을 대신해‘ 노해’라는 필명으로 활동을 이어갔는데 그건‘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의 줄임말이었다.
그리고 1984년 박노해는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풀빛출판사를 통해 내놓았다. 그 속에는 노동자가 아니면 절대 체득할 수 없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래서 <노동의 새벽>은 노동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자본에 대한 분노와 무산자의 슬픔이 너무도 선명할 수밖에 없다.
이 시‘ 시다의 꿈’ 역시 다르지 않다‘.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오는’ 긴 밤을‘ 타이밍 두알로 버티는‘ 시다’의 언 손’이라는 구절엔 그 세계를 직접 경험한 자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여기에서 나오는‘ 타이밍’은 각성제다. 작업 물량을 맞추기 위해 날밤을 꼬박 새워야 하는 철야 작업 중에 먹는 약이다.
미싱대에 올라 미싱을 타고 싶지만 아직은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저 언 손으로 꿈을 자르듯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리고 또 올려야 하는‘ 시다’일 뿐이라는 표현 역시 현장성이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그런 까닭에 박노해의 시들은 1970년대의 노동 문학보다 훨씬 구체적이면서 실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도 소박한 꿈은 등장한다. 절망하고 무너지기엔 노동자 기평, 아니 사회주의 사상가 박노해는 아직 피가 끓었다. 다만 시속에 등장하는 꿈은‘ 장군처럼 당당한 얼굴로 미싱을 타고’ ‘따스한 옷을 만들고’‘, 찢겨진 살림을 깊고 싶’은 꿈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노동의 시대가 열리고 열려 ‘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속내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래서 시‘ 시다의 꿈’에서 등장하는‘ 시다’는 사회주의혁명을 꿈꾸는 화자의 정체를 마침내 드러낸다‘.새 벽별 빛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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