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강면 부현마을 주민들의 ‘나의 살던 고향은’
꽃길 가꾸기 등 마을 정화사업, 푸드아트 강좌 등
원주민과 이주민 결속 위해 친목 도모 행사 개최

옛날 마을 공동 우물터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했던 풍경들, 두레, 향약으로 이어오던 공동체의 미풍양속이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산업화와 개인주의, 핵가족화로 인해 사라짐에 따라 사회 양극화와 주민 간의 갈등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 살면서도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안타까워한 지역민들은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민-관 협력으로 이뤄지는 ‘마을공동체 사업’도 그 일환이다. 현재 우리 지역에 어떤 마을공동체가 있는지,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매주 1곳의 마을공동체를 찾아 탐방해본다.<편집자주>

 

 

봉강면 부현마을, 부현마을은 1630년께 김해허씨가 처음 정착해 마을을 형성했다. 이 마을은 솥뚜껑 형상을 하고 있어 釜(가마부)자를 붙여 부현(釜峴)이라고 했으며 일명 가마고개 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과거 지곡리 지소에서 종이를 만드는 재료인 닥나무를 재배해 이곳에 솥을 걸어두고 삶은 곳이라 하여 이름이 전했다고 한다.

부현마을 주민들은 올해 처음으로 광양시 씨앗단계로 선정돼 마을공동체 활동을 시작했다. 단체명인 꽃피는 산골 ‘가모개’는 예전부터 구전되어 온 부현마을의 자연부락이름으로, 여기서나고 자란 원주민들은 부현마을보다 ‘가모개’라는 마을 이름에 더욱 정감을 느낀다.

젊은 사람들은 외지로 떠나고, 노령 인구들이 지키고 있는 마을에 공동체 사업을 소개함으로써활력을 불어 넣은 것은 2년 전 이 마을 이장을 맡게 된 김미라 이장님이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다 정년 퇴임한 김미라 이장(63)은 우연한 기회로 부현마을에 터를 잡게 됐고, 또 어쩌다 보니 이장직까지 맡게 됐다.

마을에 연고도 없는 외지인인데다, 젊은 여성이장이 처음인 까닭에 주민들은 탐탁지 않은 tl선을 보내기도 했다고. 때문에 김 이장은 외지인과 원주민들이 화합할 수 있고, 여성 특유의 세심함과 탐미적 성향을 앞세워 마을을 소소히 꾸미고 발전시켜가며 오순도순 웃음꽃이 피어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특히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사업을 기획했던 경력을 토대로 마을공동체 사업을 시작했다.

김미라 이장은 부현마을 2, 3세대들로 꾸려졌지만, 생계를 위해 외지에 거주 중인 청년회와 연대하며 마을 안길 꽃길 가꾸기, 정화사업 등을 추진했다.

이른 봄, 마을에 꽃나무를 심고 가을쯤 활짝 핀꽃을 주민들과 함께 감상하고 싶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집단 활동이 금지되고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문을 닫게 되면서 다소 사업이 축소됐다.

코로나19 확산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던 지난 6월 8일 드디어 경로당과 회관이 다시 문을 열수 있게 됐고, 그날 마을 주민들은 한자리에 모여 꽃나무도 심고 약과 등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나눠먹으며 오랜만의 공동체 활동을 즐겼다.

이후 틈나는 대로 10여명의 주민들과 모여 주변 쓰레기도 줍고, 회관 옆 공터의 잡초도 뽑고하면서 마을도 가꾸고 서로의 일상을 물으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

이와 함께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져 전통 음식을 만들고 나눠 먹는 ‘행복푸드 아트’ 강좌 프로그램도 운영중이다. 부현마을은 매년 1번씩 어르신들이 버스 나들이를 나서는 큰 행사가 있었지만 점점 연로하셔서 건강상 이유로 빠지는 분들이 많아지고,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올해부터 행사를 없애기로 했다.

또 초복날 농협에서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삼계탕을 대접해오던 행사도 올해는 없어져 어르신들의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19 유행에 집안에만 지내시며 별다른 즐거움을 찾지 못해 우울해 하시던 어르신들은 꽃피는 산골 ‘가모개’가 마련한 프로그램에 정말 흡족함을 느낀다고 했다.

김미라 이장은 “정관이나 회의록을 만들어 단체를 설립하고 계획안을 구성해 공동체가 활동할 수 있는 토대는 만들어졌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 사업을 바탕으로 마을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마을 주민들”이라며 “마을 청년이자 학교 후배인 채재묵 대표가 흔쾌히 공동체 대표로 나서주고 함께 해줘서 고마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젊은 친구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사업화하고 추진해나가기에는 생계도 있고, 어려운 부분이 많기에 다소 도움을 준 것”이라며 “주민들이 많이 연로하기 때문에 10년이 지나도 마을이 존재할 수 있도록 주민들이 힘을 합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 젊은 세대들이 귀촌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산업 기반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