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 도우며 자연스럽게 대를 이은 기능 전수

100% 자연물로 만들어진 세계 최고의 활과 화살
2014년 개관한 궁시전시교육관…지역민과 꾸준한 소통 행보
사회적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사회 환원이 목표

▲ 김철호 궁시 전수자

편리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세상이지만 전통 방식만의 범접할 수 없는 우수성과 심오함은 현대인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전통의 대표적인 상징물 중 하나인 활과 화살. 이제 흔히 접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수백 년에 걸쳐 조상의 지혜와 과학이 응집된 산물이다.

궁시 전수자로 살아 숨 쉬는 전통의 힘을 현대 사회에 접목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가는 김철호 전수자를 만났다.

‘궁시’라는 끈으로 이어진 아버지와 아들

누구나 ‘궁시’ 하면 김기 궁시장을 먼저 떠올린다. 67년 동안 전통 화살을 만드는 궁시장이자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2호 궁시장으로 지정된 김기 선생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장인이다. 그의 아들이자 전수자인 김철호 궁시 전수자는 민족적 전통이 담긴 활과 화살을 단지 옛것으로만 치부하는 것이 아닌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바탕으로 창조적 계승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김 궁시 전수자도 처음부터 이 길을 택했던 것은 아니다.

김철호 궁시 전수자는 “어릴 적 가장 오래된 기억을 되짚어 보면 활과 화살이 내 손에 있었던 것은 삶의 일부이자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활과 화살 만드는 작업은 130여 가지의 복잡하고 세밀한 공정을 거치고, 인력 수급의 어려움도 따르기에 과거부터 온 가족이 매달려 작업을 돕는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며 “가족들은 본의 아니게 숙련공들이 되고 부모의 손재주를 닮은 자녀 중 가업을 잇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진로를 선택할 무렵 군인의 길을 택해 30대 초반까지 군종장교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2003년 후방 근무지로 발령을 받으면서 주말마다 아버지의 작업을 도와드리며 가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됐다”며 “수많은 고민 끝에 2006년 예편하고 본격적으로 궁시 전수자로서의 길을 걸으며, 전통의 우수성과 심오함을 알리고 기능 전수를 통해 전통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한 발 짝씩 나아가는 단계”라고 미소 지었다.

조상의 지혜와 과학이 응집된 궁시

우리 활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만궁으로 줄을 빼면 저절로 움직이면서 둥근 모양이 되기 때문에 활이 살아있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활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민족의 활이 가장 예쁘고 탄력이 좋으며 동·식물의 특성을 살려 만들어졌다.

화살은 활에 대고 쏘는 가늘고 긴 대이다. 일반적인 화살의 구조는 긴 대의 앞부분에 화살촉이, 뒷부분에 날개가 붙어 무게 중심이 앞쪽에 있어, 전방을 향해 똑바로 날아갈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현재까지 전통 방식으로 제작되는 화살은 죽시(竹矢)로 옛날 이름은 유엽전(柳葉箭)이다. 조선시대 무인들이 연습용으로 쓰던 화살로 몸체는 대나무이며 깃은 꿩의 깃털이다.

화살은 크게 나누면 16가지의 공정을 거치는데 해풍을 맞은 시누죽을 채취해 6개월 이상 말려 불에 달구고 다듬는 부잡이를 두 번 거친 후 대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이후 오늬자리에 심을 끼우고 다듬은 뒤 도피를 싼다. 토리와 화살촉을 끼우고 깃을 붙여서 인두질 후 광을 내는 작업을 마무리로 화살 한 자루가 완성된다.

김 궁시 전수자는 “현재 광양궁시전수교육관에서 제작하고 있는 활과 화살은 그 우수성을 전국적으로도 인정받아 청와대 의전 시 사용을 위해 납품하기도 했고, 수원 화성에서 무술인들의 제작 의뢰가 꾸준하다”며 “공장에서 찍어내는 카본 화살보다 활시위를 놓았을 때 궁수에게 전해지는 손의 진동이 현저히 적고, 정확도와 손맛은 궁도인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전통화살이 주는 장점”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전통을 알리기 위한 부단한 노력들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어려운 기술을 나고 자라면서 인위적으로 배우기보단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기술이 전수됨으로 가능하다. 또한 아버지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전통의 명맥은 보존하면서 궁시의 우수성을 알리는 전수자의 자부심과 책임의 무게 또한 가볍지 않다.

▲ 전시관에서 이뤄진 학생 대상 프로그램

김철호 궁시 전수자는 “신궁(新宮)의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 민족이라고 일컬어지는 동이족(東夷族)이라는 뜻이 말해주듯 활을 다루는 능력과 제작기술 발전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궁시의 역사적 사료 가치를 전승·보존하기 위해서는 지역 내 궁시를 알리는 전시관 개관이 시급했다. 부지 선정 후 전남도와 협의해 건립을 추진했지만 정부 시책 변경 등으로 5~6년의 정체기를 거치며 우여곡절 끝에 2014년 광양궁시전수교육관을 건립할 수 있었다”며 그간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2014년 전수관 건립과 함께 김 궁시 전수자는 다양한 문화예술 공모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궁시 알리기에 주력했다. 2016년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공모사업에 ‘생생문화재’라는 사업명을 가지고 첫 도전을 시작했다. 이후 꾸준히 공모사업을 추진하면서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전통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올해에는 △전남도 무형문화재 공개행사 △전수교육관활성화사업 방안 프로그램 △광양 문화유산 바로알기 사업 △마을교육공동체 마을학교사업 △문화예술 해외교류 지원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 광양궁시전수교육관 외부전경

김 궁시 전수자는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전통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첫걸음이 전시관 건립이었다”며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기업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회적기업이 되면 전문 기술을 요하는 공정 이외의 작업에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 고용을 통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학생을 대상으로 전통 활쏘기 동아리를 창단하는 등 지역사회 환원에도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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