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 줄 아는 부모, 행복한 자녀’
놀이 교육의 공동체 문화 테마

옛날 마을 공동 우물터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했던 풍경들, 두레, 향약으로 이어오던 공동체의 미풍양속이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산업화와 개인주의, 핵가족화로 인해 사라짐에 따라 사회 양극화와 주민 간의 갈등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 살면서도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안타까워한 지역민들은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민-관 협력으로 이뤄지는 ‘마을공동체 사업’도 그 일환이다. 현재 우리 지역에 어떤 마을공동체가 있는지,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매주 1곳의 마을공동체를 찾아 탐방해본다.<편집자주>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12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귓가를 울리는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 언제부턴가 ‘그땐 그랬지’ 추억의 영상 속에서나 접할 수 있는 소리가 되었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이’ 80년대 초반생들만 해도 매일 학교만 끝나면 동네 공터에서, 혹은 한적한 아파트 주차장 한 켠에서 친구들과 실컷 뛰어놀았던 소중한 추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 장난꾸러기 꼬마 아이들이 훌쩍 자라 어느새 부모가 됐다. 요즘 아이들이 학원에, 전자기기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친구들과 바깥에서 몸을 쓰며 뒹구는 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하는 게 많이 안타까웠다.

그런 생각을 지닌 어른들 12명이 뭉쳐 ‘놀 줄 아는 부모, 행복한 자녀’를 주제로 동아리 ‘노라줌마’를 만들었다.

이들의 첫 만남은 전남교육청에서 초등학교에서 인성동화맘 봉사활동을 하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교육프로그램에서였다. 독서코칭, 보드게임 전문가 양성 과정 등의 교육을 받으며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지역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로 마음을 모았다.

‘노라줌마’라는 동아리를 결성하고 아파트 내 돌봄센터와 다문화가정이 모여 운영 중인 ‘지구촌 문화공동체’ 등 기존 마을공동체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만난 마을공동체 활동가들과의 인연으로 올해 초, 전남 마을공동체 씨앗 단계 공모에 도전해 선정됐다.

‘노라줌마’의 회원 12인은 매주 화요일, 프로그램 운영회의를 진행한다.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브레인스토밍을 활용해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아이디어를 모아 프로그램을 확정한다.

매주 토요일 오후 광양읍 혜윰 모꼬지 보드카페에 15가족이 모여, 지난 회의 때 결정된 프로그램을 체험한다.

전래놀이, 보드게임, 책 놀이, 매주 주제는 바뀐다. 처음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비교적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 엄마들은 어느새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졌지만, 아빠들은 쭈뼛쭈뼛 팔짱낀 채 바라보기 일쑤였다고. 하지만 19회 정도 만나다 보니, 이제는 아이들보다 아빠가 신나서 집에 가기 싫어할 정도라고 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크지만, 표현할 방법을 몰라,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 줄 몰라 데면데면하던 부모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놀아주는 게 아니라, 어느새 함께 친구처럼 함께 놀게 된 것이다.

유아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이 어울리다 보니 외동으로 매일 외로워하던 아이에겐 형, 누나, 동생이 생겼다. 가족들과 심각한 트러블을 겪던 중2병 사춘기 아들도 이곳 활동을 통해 천진난만한 아이로, 순한 양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디어와 전자기기에 중독돼 짜증만 내던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몸을 부대끼며 놀다 보니 규칙을 지키고 인내심을 배우고, 사람의 온기를, 가족 간의 사랑을 느끼며 정서적인 안정을 느꼈다. ‘아빠, 엄마 때는 이렇게 놀았어, 우리는 요즘 이런 게 유행이야’ 등등, 노라줌마 덕분에 가족 간의 대화 주제도, 시간도 더욱 풍성해졌다.

최효진 노라줌마 대표는 “온 마을에서 돌아가며 아이를 키울 때는 예의, 인성, 봉사, 나눔, 희생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전달됐는데, 요즘은 그럴 기회가 없어 안타까웠다”며 “우리는 옛날 마을의 공동 육아 시스템을 다시 재현하고 싶어 모였는데 ‘아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노라줌마’의 모토가 완벽하게 실현되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노라줌마 회원인 심정화 선생님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오랫동안 봉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해준 회원들 덕분이지만 특히 이 가운데서도 이은영 선생님의 역할은 특히 감동적이다”며 “이은영 선생님은 어엿한 성인으로 아이들을 키운 이후 본인의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한 아쉬운 부분을 다른 아이들에게 나누기 위해 꾸준히 봉사하시는 모습에 많은 것을 느끼며 배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광양읍, 중마동, 사는 곳도, 고향도, 연령대도 다양한 노라줌마 회원들은 지속적으로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각자의 소재지에 ‘공동 육아 플랫폼’을 확산시키고자 하는 포부를 지니고 있다.

최 대표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교육은 특히 시기가 지나버리면 놓치기 때문에 우리 지역에서도 빠른 시일 내에 이런 공동육아 플랫폼이 많이 생겨나 더 많은 가족들이 행복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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