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별 기자

분주히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신문직배를 하느라 여기저기 다니던 중 어느 지인이 전송해 준 사진 한 장을 받고는 발걸음을 멈춰 섰다. 몇 번이나 내 눈을 의심하면서 다시 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확대해서 보고 또 봐도 사진 속 펼침막 내용은 틀림이 없었고, 비수 같은 글자를 나열한 펼침막 뒤로, 한없이 작아진 채 서 있는 존재 또한 짐작과 같음이었다.

펼침막 내용은 “소녀상이 공간을 불법 점유했다. 시민의 휴식공간을 축소하고 행복추구권을 박탈하고 있으니 이전을 원한다. 소녀상으로 인해 도시 활성화와 지역발전이 저해되고 있다”는 내용이 다소 과격한 언어로 적혀 있었다.

잠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슴팍 저 아래서부터 뜨겁고 묵직한 답답함이 밀려왔다. 아직도 그분들의 아픔을 오롯이 함께하지 못하는 이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부끄러움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광양의 소녀상은 2018년 300여 개 지역단체뿐 아니라 초등학생들까지 저금통을 깨서 자발적인 모금 참여를 하는 등 시민의 지지를 받으며, 지금의 역사문화관 한켠에 자리잡았다. 여순사건 때 비극의 현장이었던 역사문화관 앞이 역사적 맥락에서 최적지로 뜻을 모은 것이다. 설치 당시에도 인근 상인들과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취지에 공감한다는 뜻을 내비치며 일단락됐다.

그리고 수년이 흐른 지금, 뜬금없이 소녀상 앞에 펼침막을 걸고 시민의 행복추구권과 휴식공간 축소, 지역발전 저해 등의 말을 쏟아내며 소녀상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 펼침막은 지난 9일 자진 철거가 아닌 광양시에서 불법광고물로 판단해 철거했다.

현수막을 내건 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인지 묻고 싶다. 광양의 역사문학관을 찾은 관광객들이 소녀상을 보고 기분이 불쾌해져, 관광을 멈추고 근처 상가를 들리지도 않고 서둘러 광양을 떠날 것이라는 억측인가. 코로나19로 인해 지역 상권이 침체됨을 애꿎은 소녀상에게 뒤집어 씌우고자 함인가.

그들이 언급하는 시민은 도대체 누구이며, 소녀상이 어떤 이의 행복을 저해했단 말인가. 거대 건축물도 아닌, 한 평 공간도 채 차지하지 못하는 작은 동상이 시민의 휴식공간을 축소 시켰다는 말은 더더욱 이해되지 않는다.

구도심 상권침체는 그 자체의 문제로 풀어감이 마땅하며, 소녀상과 연관 지어 억지를 부릴 사안이 아니다.

인간은 뇌 구조 속에 공감능력이라는 좋은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내 누이, 내 아내 그리고 내 딸이 이 같은 아픔을 겪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래도 소녀상이 어두운 느낌을 주는 것 같다며, 구도심 상권이 침체되는 탓을, 외출 자제 분위기로 장사가 안되는 이유를 소녀상으로 돌릴 것인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의 시대적 아픔을 공감하고,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역사의 생채기를 기억하고 되새겨야 한다.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땀 그리고 피를 딛고 이룩한 이 땅에서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에 대한 존경과 예우는 마땅하다. 소녀상은 그런 연장선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현실적 이익과 이해 논리를 앞선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인식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더이상 이런 가슴 아픈 논란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숭고한 희생이 폄하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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