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인선 작가

이웃집에서 강낭콩을 소쿠리에 한가득 담아 가져다주셨습니다. 강낭콩을 듬뿍듬뿍 넣고 지은 밥은 불그스름한 게 어린 시절에 먹던 찰밥 같다는 생각에 오래간만에 연락했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난 말이야, 너를 생각하면 찰밥 생각이 나” 우리 집의 찰밥 색깔이 남달라서 그런가 했는데 점심 도시락으로 찰밥을 자주 싸 가서 그렇다는 얘기였습니다.


이제는 찰밥을 떠올릴 때면 다른 친구 집에서 본 찰밥 색깔이 너무 붉어서 놀랐던 순간과 생일날이 겹쳐집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야 우리 집 찰밥 색깔이 다른 집과 달랐던 까닭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꿩 대신 닭이라고 강낭콩을 팥 대신에 넣고 찰밥을 했고 붉은 팥이 아닌 찰밥 색은 빛바랜 보라색이었습니다. 팥이 귀해서 동지팥죽도 강낭콩으로 쑤셨습니다. 다른 집보다는 때깔이 진하고 곱지 않았지만 맛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특별한 날과 생일 때마다 엄마께서는 꼭 찰밥을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바쁘셔도 잊지 않고 2남 3녀의 생일을 하나하나 모두 챙기셨습니다. 생일날 아침이면 안방 윗목에 찰밥, 미역국, 정화수로 삼신상을 차린 뒤, 가족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했습니다. 둘러앉아 함께 식사할 때면 생일을 맞이한 식구에게는 숯불에 바삭바삭 구운 김을 두 장 주셨습니다. 생일날만은 특별대우를 해주셨기에 언니 오빠들은 한 장씩 먹는 김을 저 혼자 두 장을 먹으니 으쓱해진 마음은 최고였습니다. 김 한 장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제겐 별거였습니다. 엄마의 마음 씀으로 생일날은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생일을 맞이한 가족이 집에 없어도 찰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이셨습니다. 밖에서도 굶지 말고 든든하게 잘 먹고 건강하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생일상을 정성스레 차렸습니다. 언니 오빠들이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각자 가정을 꾸려도, 어김없이 생일상을 차리시고 가족의 건강과 복을 빌고 또 빌었습니다. 일 년에 수차례 상에 오르는 찰밥에는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 오롯이 담겼습니다.


TV를 보다 보면 자그마한 돌로 쌓아 올린 돌탑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하늘 높이 치솟은 거대한 마이산 돌탑을 보면 신기해서 입이 떡 벌어집니다. 어느 산, 어느 산길을 가든 곳곳에 작은 돌탑들이 옹기종기 쌓여 있습니다. 누군가가 돌멩이 하나하나에 소원을 담아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돌탑들입니다. 마이산 돌탑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염원의 크기가 작지 않으면서도 한이 없는 간절함이 한결같음에는 고개를 주억거릴 겁니다.


두 손 모으고 머리 숙여 기도하는 마음은 지극합니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가족을 향한 기원은 온 마음을 다해 드리는 치성이니 하늘에 닿고도 남을 것입니다. 생활이 된 기복신앙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염원으로 두 손을 모으게 합니다. 쌀 한 톨 한 톨에 소망을 담아 정성껏 찰밥을 지으신 우리 엄마의 기복신앙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늘 따뜻한 버팀목으로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오늘은 오빠의 생일입니다. 어느덧 강낭콩이 아닌 붉은 팥으로 바뀐 붉은색이 짙은 찰밥을 먹으며 저 또한 엄마의 바람처럼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찰밥의 나이테만큼이나 가족의 우애도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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