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지기’ 포항 출신 중년 여성들의 의미 있는 공동체 활동
나무에 예쁜 뜨개옷 입히기…미관개선, 동해‧해충 예방 효과

옛날 마을 공동 우물터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했던 풍경들, 두레, 향약으로 이어오던 공동체의 미풍양속이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산업화와 개인주의, 핵가족화로 인해 사라짐에 따라 사회 양극화와 주민 간의 갈등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 살면서도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안타까워한 지역민들은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민-관 협력으로 이뤄지는 ‘마을공동체 사업’도 그 일환이다. 현재 우리 지역에 어떤 마을공동체가 있는지,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매주 1곳의 마을공동체를 찾아 탐방해본다.<편집자주>

 

 

광양에는 남편들의 발령이나 이직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온 타지 출신 여성들이 굉장히 많다. 하루아침에 바뀐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들은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지리도 문화도 낯선 타향살이에 힘겨워하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렇기에 최근에는 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마을공동체 사업 등을 통해 연대하고 교류하는 움직임이 많아졌다.

2020 광양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사업을 통해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라는 나무에 뜨개 옷 입히기 사업을 진행한 ‘우리는 여고동창생’ 일원들도 이런 사례다. 이들은 타향에서 만난 여고 동창생들로, 30년 전부터 친목 모임을 지속하며 최근 사회를 위해 의미있는 일을 찾아 나선 ‘선구자’들이다.

모임의 구성원인 이정혜, 홍수진, 김종숙, 김지숙, 권혜영, 김소형, 서동례씨는 모두 67년 양띠생으로, 30년 전 포항에서 남편 따라 광양으로 이주해왔다. 82년생 이선영씨는 막내로, 문서 작업 등 각종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금호동에 거주하면서 오며가며 하나둘 친분을 쌓기 시작한 이들은 ‘포항 동지여자상업고등학교’ 동창생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30년간 매일처럼 만나며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취미생활과 수다 등으로 풀어냈다. 그러던 중 웃음치료 강사로 지역 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정혜씨의 제안으로 취미였던 뜨개질을 통해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자 손을 모았다.

이정혜씨는 “타지역을 지나가다 나무에 예쁜 뜨개 옷이 입혀져 있는 것을 보고,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뜨개질을 즐겨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공동체 활동으로 봉사할 겸 해보는 게 어떨까 제안했다”며 “양떼들(모임명) 회원 모두 흔쾌히 수락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구성원 대다수가 마을공동체에 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이들은 가장 먼저 ‘마을공동체가 지역사회에 끼치는 영향 및 역할’ 등에 대한 교육부터 받았다. 이어 나무나 동상, 기둥 같은 공공시설물에 털실로 뜬 옷을 입히는 ‘그래피티 니팅’에 대한 이론교육과 세부 실행 계획을 수립하고, 뜨개질에 대한 기초 교육도 수행했다.

가로수에 옷을 입힐 계획이었기 때문에 가로수를 관리하는 행정기관의 협조가 필요했지만 녹지과에서는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포기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금호동장을 찾아가 사정을 말했고,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금호동 가로수에 옷을 입힐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회원 8명이 만들어 낸 작품은 154개다. 한 작품 뜨는 데 3일 이상이 걸리기도 해 밤을 새워 작업한 적도 많으며 어깨와 손목에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렇게 정성스레 만들어진 나무옷 작품들은 지난 9월 코스모스가 한창일 때 금호동 가로수에 입혀졌다.

모임 구성원들이 하나하나 인고의 시간을 거쳐 만든 작품이다보니 모든 작품을 제 손으로 연출하고 싶었지만, 워낙 작품이 많아 금호동사무소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나무에 설치할 수 있어 다행이기도 했지만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고.

이정혜씨는 “따뜻함을 떠올리게 하는 손뜨개 작품이 마을 곳곳의 가로수를 품고 있는 걸 보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우울한 주민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춥다고 하던데 ‘우리는 여고동창생’들의 활동이 나무에게도, 지역사회에게도 따뜻하고 안락한 겨울이 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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