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선 작가

▲ 정인선 작가

십 대 때는 뛰어다닐 수 없었지만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뛰어다니는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이십 대 때는 두 다리로 걸을 수 없었지만 잡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걷는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삼십 대 때는 일어설 수 없었지만 앉아서 걸어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일어설 수 있는 사람도 부러웠습니다. 사십 대 때에는 삼십 대에 할 수 있던 것을 더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앉아서도 마음대로 이동하는 사람이 마냥 부러웠습니다.

한 살 두 살 나이테가 늘어나는 것과 반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은 하나둘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제까지는 힘쓰지 않고 했던 무엇을 오늘은 애를 써봐도 결코 하지 못하게 된 날에 이르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점점 굳어져 가는 진행성 장애를 가진 제 인생이 두려움으로 덮였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끝날 것처럼 삶이 암담했습니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나날들이 현실로 마주서고 보니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히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거부하고 싶었던 퇴행을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일상으로 받아들였으며 되돌아보면 이미 지나버린 그때가 제일 좋았던 시간인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미약하나마 간절한 기도였던 소원도 이루었습니다.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은 지금이 제 남
은 인생에서 가장 좋은 한 때인걸 가슴 가득 받아들였습니다.

비교하면 불행해집니다. 지금보다 더 건강했던 지난 과거와 비교하면 서글퍼집니다. 건강한 남들과 비교하면 더 비참해집니다.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지금 제가 가지고 있고 누리는 여러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감사해야겠습니다.

중국 속담에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 또한 평범한 일상이 기적임을 느낍니다. 누군가는 나의 기적을 누리고 저는 또 누군가의 기
적을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원하던 내일입니다. 숨 쉬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마지막 구절에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행복하지도 또 그렇게 불행하지도 않다는 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중증 장애를 가진 저를 보며 웃을 일도 즐거울 일도 없고 외롭고 쓸쓸하게 보낼 거라는 오해를 하고 편견을 갖습니다.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편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썩 불행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자잘한 기쁨과 일상에서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평온합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은 일생 동안 고작 6일 행복했다고고백했습니다. 하지만 헬렌 켈러는 삼중고의 장애를 가졌어도 일생 동안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돈, 성공, 명예 모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는 방증이겠지요.

행복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에 감사하고 만족할 때 찾아옵니다.
오늘도 욕심을 버리고 매일매일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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