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때론 고독과 울분을, 일상의 흔들림까지도 지혜롭게 사신 분들의 말과 글로 갈아엎고 고르고 다독일 때가 있다. 신년 기념으로 상 백운암 지나 백운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큰 바위 얼굴을 생각해보며 높고 넓고 멀리 보고, 자세히 살펴보며 산분들의 얼굴 사진을 오려 A4 용지에 붙어 두고 자주 보기로 결심을 했다.

아직 몇 분 못 모았지만 스스로 바보라 무릎 꿇어 낮은 사람들과 키 맞춰 살다 가신 김수환 추기경, 나이 듦의 소중함과 지혜로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는 102세의 김형석 교수, 어떤 경우에도 일생을 올바르게 보고 바르게 말해온 백낙청 선생, 민족 의술인 ‘무극보양뜸’으로 150만 명을 무료 치료하고 가신 구당 김남수 선생, 독학으로 소외된 민중의 역사에 의미를 찾으며 일생을 산 역사학자 이 이화 선생, 코로나 사태로 녹색 운동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게 하는 『녹색평론』 박종철 선생, 일생을 큰누나처럼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평생을 시집살이 같이 살다간 박완서 작가 등, 고마운 분들의 삶을 회상하며 존경을 표하고 삶의 귀감으로 삼고자 함이다.

사진들을 유심히 보며 이분들의 얼굴이 보여주는 맑음과 평화로움에 생각이 멈춘다. 동시에 3년 전에 다녀온 히말라야의 설산들의 웅장함과 신비함이 겹쳐지는 것이다. 나아가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변하지 않는 진리와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벅찬 인식과 의문이 꼬리를 문다.

세계를 여행하거나 텔레비전 여행 프로를 보며 느낀 것은 인간이 만든 어떠한 조형물보다 자연의 풍광이 더 경이롭고 신비스럽다는 점이다. 히말라야든 그랜드캐니언이든 억겁의 세월 동안 눈비와 바람에 맡기어져 깎기고 다듬어지며 그저 받아들이며 견뎌온 평화로움이 장엄한 자태로 보여주고 있다.

소나 말과 개 등 인간에 순종하며 살아온 가축들의 깊고 맑은 눈빛에서 나는 경이로움을 본다. 특히 소는 일생 고된 일을 묵묵히 받아들이다 마침내는 죽음까지도 순종하는 모습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죽음을 슬퍼하고 원망하는 인간보다 마지막 순간을 더 평화롭게 맞이하는 은총을 받고 가는 것은 아닐까?

자기 개인보다 사람 사는 세상을,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눈여겨보고 배려하며 산 분들의 얼굴에 스며들어 예쁘게 피어나는 여유로움과 자애로움은 모습은 어떤 과정 에 쌓여 지는 축복일까? 나이 들며 나는 조심스럽게 그분들의 언어와 살아가는 모습 외에도 곱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에서 존경심과 숙연한 다짐을 마음에 되새기며 산다.

친구에게서 카톡이 온다. ‘하느님께 축복을 간구했더니 감사부터 먼저 배우고 오라’는 내용이다. 우연히 스스로 깨우친 깨달음이 누군가로부터 추인을 받았을 때 충일감이 온몸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킨다. 사랑과 추억을 남겨준 부모 형제들,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은연중 느껴지는 나를 닮아 오고 있다는 자식들에 대해 감사함이 크기만 하다. 김형석 교수는 나이 들며 먼저 떠난 아내보다 더 소중한 것은 늦지 막 까지 우정으로 교우하는 벗이라 했던가. 죽음을 예감했는지 ‘같이 살아 외로움을 서로 위로해주지 못하고 먼저 떠날 것 같아 미안하다’라는 김 교수의 오랜 친구로부터 받은 전화 이야기에 우정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봤다. 부지런히 퍼 나르는 벗들의 문자에서 코로나로 단절된 상면의 아쉬움을 달래며 조심하고 건강 하라 빌어보며 변함없는 우정에 감사해 본다.

살아가면서 자신을 추스르는 기준으로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화며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해본다. 시간의 변화에 꿋꿋이 맞서는 히말라야처럼, 다른 사람의 고통을 크게 보고 자신의 불편함을 잊어 평화를 얻는 훌륭한 분의 얼굴 모습 같이, 오직 신뢰로 복종하며 순종을 받아들이는 황소 같은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고착과 편견과 단정으로 굳어지는 정신과 육신을 지적 호기심과 타자에 대한 관심, 앞선 이의 혜안과 자연이 주는 무언의 지혜까지 살펴보며 변하고 또 변해야 하는 성찰과 비교도 해본다.

이 나이에 주책없이 남녀 사이의 우정의 존재 가능성을 생각도 해 본다. 가슴이 터질 것 같지도, 애절하지도 않은 만남 이지만 그저 만나면 반갑고 마음이 편하고. 헤어지면 은연중 뒤돌아 가는 모습 조금 더 지켜봐지는, 어떤 의무감도 아닌 가장 자유로운 마음으로...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깊어지고 소중해지는 변화해가는 마음을 키우는 것은 불가능한 은유이고 상상일까?

큰집, 큰 차에 대해 부러움보다 정 깃든 책상과 손때 묻은 책들, 평화롭게 내리는 눈을 볼 수 있는 창이 있는 아담한 집에서 불편 없이 살고 있다는 이 행복감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옛날 어머니 한삼모시 저고리의 동정처럼 정결하고 우리 누나 십자수 원앙새처럼 아름다운 추억 속 모습들 또한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나이가 들며 사소한 차이도 불편함으로 다가오고 악의 없는 벗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풀쑥 던지는 언어에도 웃고 포용해주는 여유도 이제 조금은 갖고 키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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