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산을 오르다 시선이 멈춘다. 키가 7cm도 못 되고 잎이 일곱 개 겨우 달린 아기 먹땡깔(까마중)나무가 네 개의 열매를 힘겹게, 아니 자랑스럽게 매달고 그중 두 개는 까맣게 익히어 놓았다. 봄에 어미 나무에서 떨어진 후 12월의 초입에야 어미 나무의 작은 가지보다 연약한 몸으로 번식이라는 소임을 다하고 아직은 온기가 느껴지는 볕 발아래 감사하며 서 있는 것 같다. 생명에의 경애심이 생각의 지평을 넓힌다. 러시아의 극동 사할린주 쿠릴호수의 홍 연어는 곰과 인간의 포획과 거친 물줄기에 맞서며 3%의 성공 가능성에도 자기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산란을 위해 강을 오르는 긴 여정에 도전한단다. 인도양 동쪽 작은 크리스마스섬에 사는 붉은 게는 바다에서 산란한 후 서식지인 숲을 향해 성공확률 1%에도 자동차에 으깨지고 천적에 먹히며 길을 잘못 들어 생을 마감하는 것이 다반사임에도 거친 파도와 해풍에 맞서며 절벽을 오르고 도로를 건너며 인간들이 만든 각종 장애물들을 넘고 피해간단다. 그들의 몸에 심어진 어떤 유전 명령이 그들의 모진 고생을 반복하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축복의 선물일까 고행의 굴레일까. 산 정상에서 멀리 따닥따닥 붙어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기어본다. 몸에 각인된 것과 생각이 찾아낸 것들을 어떻게 조화 하여야 할까.

서울의 막둥이 딸아이가 힘겨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며 사람을 상대하는 회사 일이 너무도 고되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아빠이며 직장생활의 선배로서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40이 가까운 나이의 중견간부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한없이 어린 막둥이에게! 나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부지런히 추려 모으며 조언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요즘 한없이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하다. 하루는 오전에 산에 오르며 헐떡거리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들의 예쁜 모습을 보고 휴대폰에 담아오고 오후에는 촬영 해온 영상들을 보고 시심(詩心)을 불러내며 마음을 다독여 본다. 다음날은 독서삼매경에 빠진다. 최근 읽은 글 중에는 소준철의 차분하면서도 호소력 깊은 『가난의 문법』과 20대 허태준이 절규하며 토해낸『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라는 글을 반추하고 있다. 전작은 우리가 게으르게 살아 자업자득이라며 냉소를 보내는 폐지 줍는 60분 아주머니들의 심충면담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자녀들에 대한 교육과 뒷바라지, 남편의 간병 때문에 포기하고 지나온 스스로의 삶, 이들의 빈곤은 노력부족 탓이 아니라 그들의 매몰차지 못한 여자로서의 숙명과 한국사회가 만든 결과물이라는 이유가 침묵 속에 감추어져 있음을 밝혀낸다. 허태준의 글은 대학생과 대기업위주의 담론사회에서 소외 되고 있는 산업기능요원이나 고졸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렸다. 정규•비정규직을 떠난 노동담론, 더 잘게 계급화 된 노동현장에서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소음과 탁한 공기의 열악한 작업환경 하에서 반복되는 일상. 죽은 후에야 갖는 관심마저도 신문과 방송에서 1회성으로 파편처럼 흩어지고 마는, 계속되는 위험한 일터에서 이어지는 소중한 생명들의 진혼곡 같은 절규가 메아리친다. 나의 고됨으로 타인의 더 큰 고통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하산 길에 어린 참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큰 나무들은 잎들이 다 낙엽 되어 떨어졌는데 아직 보랏빛과 푸른빛이 섞이어 붙어있다. 무서리는 떠나가라 재촉하는데 속없는 길손은 붙들고 사연을 묻는다. 평상시는 무심코 지나치던 어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누구에게도 눈길 한번 받지도, 이름 한 번 불리어보지도 못한 나무다. 키 큰 나뭇잎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어루만져주는 햇볕이 고맙고, 고적한 어두운 밤이면 내려다보며 지켜봐 주는 달님•별님이 고맙고, 무더운 여름 시원하게 적셔주는 소나기가 그리워 연약한 몸을 가누며 꿋꿋이 서 있다. 뿌리내린 돌 틈 사이 비좁음에도 가려진 그늘에도 불평 한번 안 해 보고 그저 당당히 서 있는 것이다.

고단하고 어렵고 때론 무료하기까지도 한 이 세상을 위로받으며 웃고 살아갈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이틀에 한 번씩 산행길 자연을 눈여겨보고 공부를 하면서 다양함의 이해와 오직 협동과 공존으로 서로의 소중함에 감사하며 위기에 맞서온 역사의 흔적들을 회상해본다. 거기에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감사하며 적응해가는 위대함이 있다. 코로나는 자연의 소중함과 문명 이전을 생각해 보라 했던가. 아마존이나 동남아시아 열대우림에서 문명과 단절된 채 고구마 종류나 옥수수 등 조악한 음식들로 살아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며 인류의 가장 소중한 존재 의미도 묵상해본다. 그들의 평화와 웃음에는 아프리카에 아직도 남아있는 ‘우분투’ 즉 당신이 있기에 나또한 존재할 수 있다는 공존정신이 발견된다.

나보다 어려운 사연들을 품고 다양한 고통을 인내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자. 태초의 흔적 속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기억해내고 더 많이 갖기 위해 적대시하고 차별하는 현실의 잘못됨을 고처 나가자. 우리는 지금까지 익혀온 지식만으로도 충분하다 오직 양심을 찾고 실천만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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