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원 광양여자 중학교 3학년

▲ 최혜원 광양여자 중학교 3학년

부모를 망치로 때려 살해한 후 사체까지 토막 내 유기시켰던 2000년 5월 과천토막사건이 있었다. 강력한 범죄와는 거리가 먼 도시인 과천에서 일어난 패륜사건으로 피해자 부부의 둘째 아들이 부모를 살인한 사건이었다. 조사가 시작된 지 3시간 만에 가해자는 자백했고 그 형은‘동생을 이해할 것 같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겉으로는 너무도 모범적인 중산층 가정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둘째 아들이 부모를 살해하고 나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생활을 영위했으며 큰아들은 그런 동생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을까?

피해자 부모는 늘 자식들에게 자신이 서울대 못 간 피해의식을 표출했다.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큰아들 대신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작은아들은 부모로부터 ‘실패한 자식’으로 거칠고 폭력적인 언행에 노출됐다. 잘못된 인성을 지닌 부모에게 자라 학대받은 사건은 안타깝고 공분을 살 만하지만, 그 부당함을 참지 못해 윤리규범을 거스른 행동은 잘못됐다.

조선시대 판소리계 소설인 옹고집전은 노모에게 불효하고 학대하는 옹고집을 징치하기 위해 도승이 짚으로 가짜 옹고집을 만들며 잘못을 바로잡는 이야기이다. 가짜 옹고집이 진짜 옹고집과 다름없이 행동하자 가족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해 관청 송사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 가계와 재산 등을 확인하는 송사에서 진짜는 가짜에게 패소해 축출을 당한다.

고생하던 진짜 옹고집이 개과천선해 집으로 돌아오자 가짜 옹고집은 허수아비로 변하고 진짜 옹고집은 노모에게 효도하고 불도를 숭상하는 인물이 된다. 옹고집은 조선 후기 계층의 분화에 따라 등장한 신흥 서민 부자 계층으로, 양란 이후 상품 작물 재배가 늘고 상업이 발달하며 등장했다. 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부를 쌓았지만 윤리도덕이나 인정 따위는 없이 오직 신분상승, 재물에만 관심을 가지는 부도덕한 부류였다.

독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는 참다운 행복을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인격을 성장시키고 정신적 교양을 쌓으라고 했다. 자연적인 욕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부 이상의 부는 우리가 겪는 참된 행복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수많은 근심과 걱정으로 인해 행복을 침해당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행복한 삶에 있어서 물질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의식주를 유지하는 데 드는 기본적인 생활비 등의 경비는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도를 넘어 혈안이 되어 빚어낸 결과는 모두를 불행으로 이끌기에 물질이 최고의 가치로 등극한 게 별일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김순옥 작가의 ‘펜트하우스’는 2020년 하반기에 방영된 월화드라마로 시청률이 20%가 넘으면서 뜨거운 사랑을 받았고 현재는 시즌 2로 다시 안방극장을 찾아왔다. 펜트하우스에 나오는 천서진이나 주단태 같은 인물은 금전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으며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이라도 동원하는 인간형이다. 정신적인 가치와는 거리가 먼 천박한 자본논리에 의해 주변을 정리하며 궁극적인 삶의 목적을 물질로만 계산한다.

개과천선이라는 흔한 고사성어를 사람들은 자주 사용하지만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에는 소홀하다. 잘못을 고쳐 착하게 바뀐다는 뜻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를 농담처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부여하는 의미로 여길 뿐 스스로에게 적용하지는 않는다. 한정된 재화에만 집착하고 노모에게는 불효를 저지르는 등 부도덕한 인간이었던 옹고집은 개과천선했지만 그렇지 못한 수많은 옹고집이 가끔 뉴스에 나오거나 음지에서 기승을 부릴 거란 생각을 한다.

자본의 위력에 매몰되어 물질적 소비와 소유에 탐닉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진정한 인격체로 거듭날 수 있다. 가장 보편적인 인류의 감정은 사랑이며 인격적인 교제에 의해 그 사랑은 진정성을 지닌다. 상대를 존중하고 온전한 인격체로 배려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사랑은 세상의 욕망에 물들지 않으며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다. 여러 감정으로 엮어진 자신을 들여다보며 마음에 거슬리는 일은 없는지 살피며 올바른 인성을 형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눈앞의 단기적인 성취나 명예를 좇지 말고 ‘무엇이 중헌디’를 찾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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