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자연을 가까이서 즐겨보고 독서와 글쓰기가 일상이 되면서 자연의 섭리와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느껴가는 즐거움이 있다. 나 역시 요행이나 행운의 존재를 믿고 희망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내 머리가 인식하고 내 마음이 감내하는 범위내의 우연을 희망하며 산다. 내가 돌덩이를 던져 일으킨 물결이 빨래하는 누나의 손등을 간지럽혀 드려, 사랑으로 충만한 누나의 눈길이 웃음을 품으며 나를 쳐다보고 조금이나마 피로를 잊는 예쁜 추억이 만들어지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나의 꾸준한 행동가 노력이 든든한 습관으로 체화되어 나의 일상이 어제를 고마움으로 받아들이고 내일을 쉽게 예측하는 그런 평화로운 삶이기를 소망한다.

고달픔으로 지친 우리는 소중한 일상을 고됨과 불편함으로 인식하고 거리 두기를 희망해서일까. 경이와 신비감은 사람 사는 세상과 이야기에서 멀어질수록 그 느낌은 극에 달한다. 장엄한 높은 산과 깊은 협곡, 극지의 설원과 사막의 끝없음에는 생명의 근원인 흙이 닳고 깍끼어 쓸려가고 덮여 보이지 않을 때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찬사를 받는다. 우리는 요행과 행운 같은 신비함을 쫓아 일상의 소중함을 소홀이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것은 개구쟁이 벗들과 감꽃을 주어 목걸이를 만들고, 찔레 순을 꺾고 도토리를 줍고, 메뚜기와 여치를 잡고, 굴렁쇠를 굴리며 마을을 돌던 추억들이, 코끝 시린 삶의 흔적들이, 소중함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우리 조상들은 고된 농사일을 품앗이로 이겨내고 연초에는 농악 놀이로 마을을 돌며 고단함을 달래며 풍년과 더 나은 삶을 소망하였다. 대보름에는 찰밥을 나누며 질병 등 액땜을 빌었고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 신에게 모두의 풍요와 평안 등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올렸다. 이러한 소중한 풍습들은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농사가 잘되고 병마를 막아주라는 소박하고 절실한 바람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살아감을 꿈꾸고 개인의 희망보다는 마을 공동의 번영과 평안을 소망하고 빌었다. 차별 없는 세상에서 더불어 손잡고 살며 이웃들의 웃는 모습이 자기가 웃는 것보다 더 보기 좋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연대와 공존, 이타적 미풍양속은 하나둘 사라지고 경쟁과 차별에서 삶의 성공과 의미를 찾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1인당국민소득은 놀라울 정도로 늘었으나 국민의 행복지수는 끝없이 추락하고 자살률은 반대로 치솟고 있다. 연초 계획의 성공확률이 8%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코로나 사태까지 덮치자 올해도 변함없이 자신의 면역력을 키우고 행복감을 높여주는 습관 갖기의 중요성이 책과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에서 관심이 요란스럽다. 『하루 5분 습관 수업』에서 요시이 마사시는 “잘하고 못하고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차이일 뿐”이라고 일괄하며 “가족과 주변에 고마움을 표현하고, 벗은 신발은 가지런히 정리하며, 상대의 눈을 보고 인사하고, 날마다 글을 쓰는 ‘작은 습관’을 몸에 장착했더니 인생이 달라졌다”라고 고백한다. ‘평범한 일상의 작은 습관이 성취의 감각을 키워 성공을 쌓아가는 밑거름이 된다’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들 한다. 나는 여기서 요시이의 사례에서 나름의 공통점을 찾아본다. 고마운 표현•신발 정리•눈 맞춤•글쓰기 등은 극히 일상적이며 개인적 이익을 취하기보다는 배려와 공존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지인의 카톡에서 건강을 위한 꾸준한 스트레칭이 참으로 어렵다는 하소연이 온다. 나 역시 반복되는 산행과 독서와 글쓰기를 하며 나이 때문인지 버거울 때가 있다. 때론 망설임이 있고 고됨이 있지만, 항시 즐거움이 더 크고 내일이 기다려지는 요인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의 몸에는 70년 남짓의 풍요와 비교적 안정된 1만여 년의 정착한 농경사회 외에 600만 년의 방황과 굶주림의 유전인자가 심겨 있다. 인내와 성찰로 사리를 품은 고승은 아니라도 고비를 감내하며 일상으로 체화하는 꾸준함 속에는 태고의 본능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직한 반복은 어리석음이 아니라며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느낌이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포근하게 눈이 내려 세상이 하얗게 변한 창밖을 보며 소망하나를 빌어본다. 우리들의 생활 태도와 습관이 조상들의 더불어 살아가기를 꿈꾸었던 미풍양속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뜻을 받들고 지혜를 배우며 어떤 형태로든 연결되는 기회를 찾을 수 없을까. 부족함에서 소중함을 찾고, 목숨을 같이하며 생존을 위해 더불어 살며 힘을 모았던 태고의 역사를 배워야 한다. 나는 좋은 습관은 덕(德)이라는 말을 명심하고 산다. 신통한 것은 좋음을 찾는 노력과 꾸준한 습관은 인체구조의 신묘한 소통을 통해 보다나은 습관을 연결해 준다는 점이다. “이 세상 어디보다 책이 있는 구석방이 최고 좋다”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도 이해 시켜 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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