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문화 맥박 치는 칠성리 성북마을

광양읍 칠성리 성북마을 이름은 한자가 바뀐 내력이 있다. 1912년의 지방행정구역 명칭 일람에서는 칠성면 성북(星北)으로서 북두칠성을 뜻했는데, 1987년 광양군 행정구역 일람에서는 칠성리 성북(城北)으로 써서 읍성의 북쪽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실제로 읍성의 북쪽은 호북이고, 성북은 읍성의 북서쪽 지역이다. 마을 이름이 읍성에서 보는 방향에 근거할 수도 있겠지만, 7개의 동산이 북두칠성이라는 별자리로 연결된 이름이라면 더 풍성한 얘깃거리를 있지 않을까 한다.

광양장도박물관 : 장인을 이어가는 가문

광양시 경제에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이 광양제철소라면, 전통문화에서 으뜸으로 손꼽을 것은 장도박물관일 것이다. 제철소와 장도는 쇳물을 녹이는 공정을 공통적으로 포함한다. 광양제철소의 용광로는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세계적인 규모의 것이지만 장도박물관은 화로 같은 전통 기구를 가지고 손으로 작업한다. 천양지차, 비교할 정도가 아니다.

하지만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박종군(59) 장도장은 역사에 남는 것은 문화일 뿐, 산업은 일시적이라고 단언한다. 문화에서 지역의 긍지를 찾아야 하며, 더구나 장도는 정신문화 아니냐고 되묻는다. 장도박물관과 장도장, 광양의 대표 문화로서 대한민국 명품이 분명하다.

광양 장도장은 2014년 세상을 떠난 박용기 선생이 197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문화의 불모지인 광양의 문화재로서 우뚝 빛났다. 그는 2005년 광양시에 자신의 장도 공방과 재산을 기부채납하고 꿈꾸던 장도박물관을 세웠다.

▲ 광양장도박물관 입구

박종군 장도장은 2011년 문화재보호법이 바뀌어서 스승과 전수자가 동시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게 된 최초의 사람이다. 아버지(박용기)와 함께 제60호 문화재가 되자 비로소 효도한 보람을 느꼈다. 아내 정윤숙(58) 씨와 큰 아들 박남중(29) 씨도 아버지의 제자로서 공예기술의 경지에 올랐다. 박남중 씨는 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2개나 받았고 이수자로 인정됐다. 둘째 아들 박건영(23) 씨는 장도 전수 장학생으로 기술을 익히면서 2019년 대한황실공예대전과 2020년 전주전통공예전국대전에서 각각 특선을 했다. 그리고‘2020년 국가무형문화재 이수 심사’를 통과했다.

한 가문이 3대에 걸쳐 장도장의 전승 계보를 만들며, 성북마을에서 한국 전통 문화의 맥박을 담금질하고 있다. 박종군 장도장은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이사장을 2018년부터 맡고 있다. 장도박물관과 장도장 가족들은 광양을 넘어 대한민국 전통문화의 산실이다.

남부학술림 관사와 주변의 정원

서울대농생대 남부학술림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 동경제국대학 ‘연습림’을 이어받은 아픈 유산이다. 백운산 학술림 면적은 110㎢로서 광양시 면적 456㎢의 4분의 1이나 되도록 드넓은데, 그 학술림을 관리하는 사무소가 성북마을에 자리했다. 이곳의 정원에는 울창한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이름표를 달고 있다. 동경제국대학 ‘연습림’시절부터 심은 나무들 중에 대왕송, 금목서, 철쭉 등 1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희귀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학습공원으로 가치가 있다.

▲ 등록문화재 제223호 남부학술림 관사

아울러 남부학술림 관사 건물 2동은 등록문화재 제223호로 지정되었는데, 건물 외곽으로 단단한 담장을 둘러치고 출입문도 닫혀 있다. 남부학술림의 사무실은 전반적으로 옥룡면 추산리 시험장으로 옮겨 갔으나 성북마을에 있는 시설과 정원은 광양시에 넘겨지지 않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인 건물뿐만 아니라 정원까지 광양시에서 관리를 하며 시민의 공원으로 탈바꿈하기를 기다린다. 2011년 서울대가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되면서 남부학술림의 국유지까지 이전하려는 것을 시민들이 반대하여 막아냈지만 국립공원 추진은 멈춰 있다. 광양의 상징인 백운산까지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공원으로 새로워지길 바란다.

남부학술림사무소 동편 골목 안쪽에 남기동(81) 김재숙(75) 부부의 한옥 정원수들은 담장 너머로도 가지런히 손질된 모습을 보인다. 해방되던 해에 집을 건축하면서부터 해마다 나무를 심고 손질했으니 75년의 집안 이야기가 담겼다. 이 집 정원수 관리는 1년에 세 차례 조경사의 관리를 받는다. 풀 뽑기를 비롯한 일상적인 손질은 아들과 며느리가 와서 함께 한다. 손자들이 오면 잔디밭에서 공차고 뛰놀며 즐거워한다. 정원은 아이들의 교육에 큰 도움을 주는 요소다. 김재숙 씨는 젊은 세대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며 주택과 정원 문화를 계승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광양시 어린이보육재단 황재우(75) 이사장 주택의 대문 앞 담장을 치장한 마삭줄이 꽃을 피워 향기를 풍기면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도 즐겁다. 황재우 씨는 부모님이 거주하던 집을 보수하고 싶었지만 너무 낡아서 2006년 신축을 했다. 정원에는 선친이 가꾸던 정원수와 어머님이 날마다 기도하던 성모상을 그대로 두고서 재구성했다. 주택 뒤편의 소나무 숲에는 2층의 트리하우스를 만들어 아이들의 공간으로 했다. 황재우 씨는 정원을 공유하는 빌라를 지으려고 집 앞의 합동주조공사 부지를 사들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 광양시에서 그것을 매입해서 광양읍 주민센터를 짓는다고 하니, 주민센터에서 정원을 바라보며 쉼을 얻을 수 있도록 담장을 허물어 손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남기동 씨 한옥과 정원
   
▲ 황재우 씨 주택과 정원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사랑의 공동체

남부학술림사무소 서쪽에서 광양여자고등학교로 가는 대형 육교 아래에 있던 노후주택을 철거하고 작은 공원이 조성되었다. 그 북쪽에 광양제일교회 예배당과 비전센터가 있는데, 큰 도로변의 부지에 소나무 정원을 만들고 쉬어갈 수 있도록 의자를 배치했다. 도로변 상업지역을 휴식 공간으로 만든 광양제일교회 앞의 주차장이 남부학술림사무소 북서쪽 담장인데, 그 담장을 허물어 정원으로 연결하면 도심의 아늑한 공원으로 사랑받을 것이다.

청소년문화의집은 성북마을을 관통하는 큰 도로변 서쪽의 3층 공간인데, 청소년들이 게임하고 동아리 모임하며 길거리 농구도 할 수 있다. 돌봄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지도하는 ‘방과 후 아카데미’는 초등학교 4~6학년 40여 명에게 학습을 지원하고 체험활동을 이끈다. 청소년문화의집은 광양YMCA에서 위탁 운영을 하는데, 정성근(38) 관장은 청소년들의 특성에 맞춰 놀이하고 쉬면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공간이 되도록 직원들과 함께 노력한다.

청소년문화의집과 그 옆의 공동주택이 들어선 곳에 택지개발을 하기 전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어서 ‘부부목’이라 했다. 그런데 할머니 나무는 죽고 할아버지 나무가 남아서‘홀아비 정자나무’라 불렀다. 주민들은 그 노거수를 마을 땅으로 옮겨 달라고 요구했다. 택지개발조합은 도로변 상가에 위치한 580년 정도의 느티나무를 성북마을 소유의 땅으로 옮겨 심었다. 이 홀아비 정자나무가 차지한 90평 정도의 땅은 공원으로 관리하며, 그 옆에 위치한 광양교회에서도 주변에 정원수를 심어서 함께 보살피고 있다.

장애인 지원활동을 펼치는 실로암마을이 성북마을에 안착한 것은 2018년이다. 실로암마을 이경정(53) 원장은 1999년부터 실로암 간사로 일하다가 2008년부터 원장을 맡았다. 실로암마을이 매화원과 분리된 후 사무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4번이나 이사를 했고, 어느 창고로 옮겼을 때는 빗물을 받아내기도 했다. 20평 정도에서 사무실과 프로그램 진행을 하면서도, 해마다 바자회를 열어 자금을 모으며 염원한 지 10년 만에 이곳에 땅을 구하여 건평 90평의 독립 시설을 마련했다. 장애인과 봉사자들에게 동시에 보람을 주는 실로암마을은 장애인 재가복지에 청춘을 바친 이경정 씨의 정성이 어린 곳이다.

(※ 이 글은 2020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비를 지원받은 연구보고서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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