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아빠는 글 쓰면서 왜 같은 내용을 반복하느냐는 귀여운 항의가 날아온다. 막둥이는 오빠나 언 니와 달리 하고 싶은 이야기에 망설임이 없다. 맏이인 아들은 티가 날 정도로 노년의 아빠 기분을 자나 깨나 의식하는 것 같고, 큰딸은 아이 둘을 키우고 나니 요령이 생겼는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예민한 부분은 피해간다. 이름 있는 회사의 중견간부란 놈이 착해빠져 거짓말은 못 하는 성정이 걱정되는 부분도 있으나 사랑스럽다.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인가보다. 기도나 묵상이 없이도 일상을 그저 즐겁게 살아가는 것만으 로도 마음이 정화되고, 나의 하루하루는 노래요 춤이고 시가 된지 오래다. 나태주의 ‘풀꽃’ 시가 아니라도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말이 어디 풀꽃에만 해당하랴! 객기 일까, 노년의 무력감과 노쇠에 누군가 한번 도전 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는 1시간 반씩 아침마다 스트레칭 하고 하루는 2시간 동안 산행을 해온 것이 이제 4월 말이면 2년이 된다.

체력의 좋아짐보다 계절 따라 변하는 이름 모르는 풀꽃들과 새싹이 움이 트고 싱싱하게 자라며 곱게 단풍이 되고 떨어지는 순환과 다양한 꽃들이 시샘하듯 피고 지는 모습들에 부족함이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따금 내려오는 자식·손자들과 같이 산행을 할 때면 부러운 눈으로 “보기 좋습니다. 손자들이 참 귀엽게 생겼네요. 좋은 하루 보내 십시오” 라는 산행에서 안면을 익힌 분들의 인사 말은 열 번을 들어도 즐겁기만 하고 쓰고 또 쓰고 싶다. 자세히 봐야 예쁘고 자주 봐야 정이 든다는 사실이 이렇게 실존적이고 중독성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늦은 공부다 보니 지식이 넓고 깊지 못한 나는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경험한 것이다. 내가 깨달은 행복의 지혜는 용심을 줄이고 나의 주위에 있는 내가 사랑하는 자식들과 벗들과 지인들과 선하고 정직하게 마음을 나누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고매한 철학과 심오한 지식보다 그저 존재함에 만족한다는 뜻이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어떤 누구의 평가보다 내 영혼의 자유감,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한생명 으로서의 존재감, 자식들의 진솔한 존경심의 표현, 지인들의 가벼운 격려 정도면 족하다 생각하며 산다.

종교 생활은 쉬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사물에 감추어진 지혜를 눈여겨보고 귀기울여 보며, 고 운 노을이 지듯 내 목숨이 다할 때 내 영혼이 부끄럼 없이 어릴 적 벗들과 뛰놀던 푸른 잔디 위를 달려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먼저간 벗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가길 희망도해 본다.

“우뚝 서려 하지 말게 나/평평해지게나 부서지게나/그러면 그대로부터 들꽃들이 피어날 테니” 이라 노래한 이란의 신비주의자 루미의 시를 나는 제일 좋아한다. 노동은 어떤 고전보다 중요하다며 대학교수직보다 노동을 중시하며 미국 시에라네바다 산속에서 52년 이상 살며 『야생의 실천』이라는 저서에서 생명이 뿌리박고 사는 저마다의 지역을 강조하며, 낫과 괭이와 삽으로 충분한 나는 배울 것이 없다며 평화와 환경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게리 스나이더(1930~) 시인은 “함께 머물고 꽃을 배우며 가벼이 떠나라” 강조한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쓰며 농부 시인으로 25년을 외딴섬에서 살다죽은 야마오 산세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고요함이다. 산은 고요하다. 밭도 고요하다. 그래서 나는 고향인 도쿄를 버리고 농부가 되었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성인군자도 못되고 특별한 지혜를 가진 것도 아니다. 흉내를 내거나 가장을 할 의도도 전 혀 없다. 다만 나름의 삶을 대하는 태도나 취향은 조금은 다른 것도 같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저 자연과 주위를 눈여겨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것은 자랑할 만하다 자부한다. 73세의 나이에 매주 글 한 편을 쓰다 보니 서평과 신간 소개 글을 정독하다 시선이 가는 책을 골라 사는데, 마음이 끌리는 책은 위 소개 책 외에도 H.D.소로의 『월든』이나 나카노 고지의 『청빈의 사상』, 앤드류 매튜스의 『마음 가는 대로해라』 등에 애착이 간다는 사실 이다.

또 한 번 쓰게 된다. 농사면 농사, 공부면 공부, 가장 좋아하는 산행까지 퇴직 후 걸어온 길들이 신통하게도 연결되는 공통의 부분이 있다. 지금도 나는 독서를 마치고 밤 10시경 잠자리에 들면 ‘걸어서 세계 속으로’ 나 ‘세계 테마기행’ 등 다큐 멘터리를 30분 정도 보며 가장 평화로운 상태에서 잠을 청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부족함 속에서도 나눔을 삶의 철칙으로 믿고 사는 사람들. 화산과 태풍과 눈보라 속에서도 발딛고 서 있는 땅을 내 몸보다 소중히 여기며 지켜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떠한 의미나 논리보다 그저 살아감의 소중함을 눈으로 공감하고 생명이 허용되는 순간까지 삶에 감사하며 그저 신명나게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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