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서 - 최영미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시인 최영미

  1. 년 서울 출생
  1. 년 계간 <창작과 비평> 등단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외 다수

이수문학상 외

최영미는 한국사회의 위선과 허위, 안일의 급소를 예리하게 찌르며 다시 한번 시대의 양심으로서 시인의 존재 이유를 구현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입니다. 그래서 신경림은 그의 시 정신에 대해 “진실을 추구하는 치열한 정신 없이는 이와 같은 시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평가를 툭 내뱉기도 한 것이겠지요.

시인의 이러한 시선은 시인이 몸담았던 80년대, 그러니까 386세대에게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은 586세대로 일컬어지며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 자신의 세대에게 보내는 시선 역시 허위와 안일을 파헤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니, 무법한 권력에 항거하다가 이제는 스스로 거대한 권력 집단이 된 자신의 세대에게 더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미는 데 주저함이 없지요. 어쩌면 시인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통해 이미 세대와의 결별을 단행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시인은 광적으로 독서에 몰입한 소녀였으나 시인을 꿈꾸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외교관이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1980년 서울대 입학한 소녀는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듯 교내 시위에 참가했다 무기정학을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에도 운동권 주변을 맴돌다 어느 날 고시원에 홀로 남겨진 일기장에 자신이 ‘시 무엇 같은 것’을 끄적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녀는 그렇게 첫 시집을 발표하는데 그게 시인의 필력을 세상에 알린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입니다.

‘끝남’이란 종결의 의미 이외에도 단절이나 이별을 의미를 함께 지닌 것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이나 미래를 여는 출발 선상에 서 있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시 밥상에 올라온 시 <선운사에서>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사방천지 피었다 지는 동백꽃이 붉디붉게 산사 주변을 물들었을 때와 무서리 지듯 모가지 채 떨어져 내린 후의 풍경은 묘하게 대비됩니다. 아마도 우리는 이런 내력을 서러움이라고 부를 테지만 어쩌면 그보다 깊은 곳에서의 속울음 같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꽃 피고 짐, 만나고 헤어짐, 그 찰나 간에 머물렀다 떠나는 감정과 망각 사이에서 시인의 복잡한 속내가 어렵지 않게 읽히는 건 비단 저뿐만 아니겠지요. 더구나 꽃 지는 일이 열매 맺고 다시 피는 예정에 있는 일일 것이나 헤어짐은 내 속에 피워냈던 걸 뿌리째 뽑아 저문 시간 속으로 내던져야 하는 일이고 보면 그 서러움의 깊이가 어디 깊디깊은 우물에 비하지 못할 일이겠는지요.

그러고 보면 수많은 이들이 선운사에서 한 시대와의 이별을 고한 것을 보면 참 별난 절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도 여전히 핏물을 머금은 채 뚝뚝 떨어지는 동백의 속성 탓일 터입니다. 윤대녕의 단편소설 <상춘객>에 이르면 최영미의 감정을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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