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민들 주최, 16개월 만에 열린 수요시위와 함께 진행

평화를 남기고 간 광양 소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명금 할머니 21주기 추모제가 지난 3일 광양역사문화원에서 열렸다.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다 16개월 만에 재개된 제1516회 수요시위와 함께 광양시민들이 주최한 이번 추모제는 정재원 전남 시민의 눈 대표가 북소리로 시작을 알렸다.

신임숙 YMCA 청소년인권센터장의 사회로, 광양의 3·1운동을 이끈 김상후 독립운동가 고손자인 김형택 씨와 서민영 어린이, 김지성 학생 등이 대표분향과 헌화를 맡았다. 이어 광양만녹색연합 현능 상임대표의 여는 말씀과 김지연 광양시 여성단체협의회장의 문명금 할머니 생애 회고, 박두규 YMCA이사장의 추도사, 박미라 순천평화나비회원의 연대사, 김양임 광양 YWCA 이사의 글, 서민영 어린이와 강현수 광양만 촛불가수의 추모곡, 조연화 동화작가와 김지성 학생의 추모시 헌정 등으로 진행됐다.

문명금 할머니는 1917619일 광양군 진상면 구황리에서 태어나 1935년 하동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의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꼬임에 빠져 중국 헤이룽장성 손오현에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로 10년간을 살았다.

에이꼬, 후에는 노부꼬라는 이름으로 하루에 20-30명의 일본군을 상대했던 문 할머니는 패망한 일본군이 위안부를 데리고 떠날 때 혼자 숨어있다 위안소 인근 조선 사람이 모여있는 마을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곳에서 조선인 남자를 만나 결혼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이른 나이에 남편을 잃고 고달픈 삶을 살다 1999년 설 명절을 앞두고 64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꽃다웠던 열여덟 소녀는 여든 살 할머니가 돼서야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고국 땅을 밟았고 또렷한 모국어로 정말로 내가 우리나라에 온 것이 맞냐며 울먹였다.

문 할머니는 그해 973개월간의 임시 체류 기간을 마치고 중국으로 갔다가 그토록 가지고 싶던 대한민국의 국적 회복 허가를 받고 영구 귀국해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다 1년여 뒤인 2000113일 심근경색 등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고국에 돌아온 할머니는 20006월 일본군위안부로 등록돼 정부와 정의기억연대로부터 받은 생활지원금 4300만원을 강정구 교수와 이해동 목사가 공동대표로 있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실위원회에 기부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김상기 다사리연구소 대표는 문 할머니의 고귀한 삶을 기리고 그 뜻과 정신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문명금 평화상건립 움직임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문명금 평화상 제정은 우리 광양 시민사회가 해결해 가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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