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 한국창의예술고등학교가 중마동에 개교했다. 문화예술 불모지인 광양에 한국창의예술고등학교와 도립미술관이 연달아 들어서서 문화의 메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창의예술고 초대 교장인 신홍주 교장을 만나 설립 배경과 학교 운영 방향, 앞으로의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 보았다.<편집자 주>

광양, 그리고 한국창의예술고

광양은 지리적으로 전라남도 동쪽에 치우쳐 있다. 지역은 전남이지만 진상면, 진월면, 다압면은 광양보다는 하동에 더 가까워 생활권은 하동이다. 오래 전부터 서로 왕래하다 보니 말투에도 경상도 말씨가 섞여 있다. 1,221m로 전남에서는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백운산 골짜기를 중심으로 봉강, 옥룡, 진상 등을 갈라 놓아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들어서기 전만 해도 사람들은 먹고 살기 바빴다. 장흥이나 강진처럼 유배지 문화로 역사에 길이 남은 걸출한 인물이 배출되는 것도, 인근 순천이나 여수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백운산과 섬진강, 그리고 남해를 끼고 있어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문화적으로는 불모지에 가까웠다.

그런 광양에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중마동에 한국창의예술고등학교가 20203월에 개교, 광양읍에 터를 잡은 도립미술관이 20213월에 개관하였다. 한국창의예술고등학교는 공립예술고등학교로 예술적 재능이 우수한 학생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예술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국에서 7번째로 설립된 특수 목적고이다. 현재 학년별로 창의음악과 2학급, 창의미술과 1학급으로 운영되지만, 내년부터는 창의예술과로 신입생을 통합선발한 후 창의음악과, 창의미술과, 창의융합과 중 전공을 선택할 기회를 부여한다, 초대교장인 신홍주 교장을 만나 설립 배경과 학교 운영 방향, 그리고 앞으로의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창의예술고 초대 교장 신홍주

한국창의예술고등학교 신홍주 교장을 만나러 간 날은 가을 한복판이었다. 하늘은 푸르고, 단풍은 붉었다. 광양 마동저수지와 숲으로 둘러싸인 부지에 지하 1, 지상 3층으로 지어졌다. 55개의 개인 연습실과 실습실, 다목적 강당, 기숙사 등이 갖춰져 있다. 새로 지은 건물은 흡사 대학교 건물처럼 널찍하고 공간 구성도 창의적이어서 일반적인 모습의 고등학교는 아니었다. 학교 시설과 주변 환경도 최고 수준으로 보였다.

교실 한 칸 크기의 교장실은 단정히 정리되어 있었다. 신홍주 교장은 교직경험이나 교직이수자가 아닌 해당 분야 전공자를 대상으로 모집하는 개방형 공모교장으로 선발되어 202031일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Q. 초대 교장의 영광, 대학에서의 전공과 지원 동기는?

서울대 언어학과를 나오고 서양학과를 다시 공부해서 학사가 두 개입니다. 석사는 영국 브라이튼 대학교의 연속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과를 나왔고, 세종대학교에서 ‘VR 애니메이션의 스토리텔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원자는 모두 5명이었습니다. 제주도 이중섭 미술관에 입주작가로 1년간 있었는데 서귀포 정도의 00규모가 저에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번 교장공모에 응한 건 새로운 길을 만드는 도전입니다. 하얀 캔버스 앞에 서면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것처럼 이번 도전도 그런 마음입니다.

전남에 근무하는 건 처음이지만 저는 항상 제 마음의 고향처럼 생각하고 있어서 익숙하고 편안합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집안 형편상 저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나주에서 컸어요. 여기 사람들은 초등학교까지는 다녀야지 나주 사람이어야 하지 않느냐며 말하지만 제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외손녀인 저를 각별하게, 다시 없이 귀히 여겨 주셨어요. 어렸지만 하얗게 눈 쌓인 길을 아스라이 바라본 기억이 선명합니다. 외갓집 마당에 있는 우물을 펌프질하거나, 감꽃을 실에 꿰어 목에 두르고 다닌 기억도 아름답게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외할아버지가 그런 저를 이곳으로 이끄신 건 아닌가 종종 그렇게 생각합니다.

음악과 2, 미술과 1반 모집, 광양시의 전폭적인 지원

1학년과 2학년은 재학중이고, 며칠 전 내년 신입생을 뽑았습니다. 음악과 40, 미술과 20명 등 총 60명을 전국 단위로 모집합니다. 음악과는 클래식과 실용음악이 있고, 미술과는 세부전공을 2학년 때 선택하는 데 조소, 회화, 미디어 아트, 웹툰, 애니메이션 등의 응용예술도 지원하여 맞춤형으로 가르칩니다. 90%이상의 강사가 석·박사 출신으로 대학 강의와 창작 활동을 병행하는 분을 모셔서 강의의 질을 높였습니다.

선생님도 이원화되어 있습니다. 공립학교니까 발령받아 오신 일반 선생님과 음악 선생님 두 분, 미술 선생님 한 분이 있고, 예술 실기를 전담하시는 예술전문강사 23분이 출강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공채를 통해 계약제 초빙 형태로 모신 겁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업무협약에 의해 광양시에서 전국의 예고 중 전무후무한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학생들이 실습용으로 사용하는 악기와 교구도 학생 정원에 맞게, 교구 역시 최상품으로 구비되어 있어 교육환경으로는 전국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공립학교이기에 전남도교육청 소속이고, 광양시의 시 보조금이 1년에 10억씩 십 년간 지원받습니다. 전국적으로 이 정도 지원을 받는 학교는 없지요. 그런데 작년과 올해는 참 어려웠습니다. 전교생 해외연수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무산되었습니다. 음악과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원과 MOU가 체결되어 있고, 미술과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 문화 예술 체험 프로그램으로 다녀올 예정이었습니다. 내년에라도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전원 무상으로 2학년까지 다녀올 예정입니다.

융합예술교육을 지향하는 교육

전국 단위로 모집이지만 전남지역의 학생을 50%이상 선발합니다. 1기 학생들은 여수, 순천, 광양 지역의 아이들이 75% 차지하고, 그 외 지역의 아이들이 25%입니다. 음악, 미술 교육의 흐름을 교육과정에 어떻게 반영하여 다른 예고와 차별화할 것인가를 고민 중입니다.

차별화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융합예술교육이지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융합예술교육의 흐름이 뚜렷합니다. 전국에서 31번째의 예술고등학교로 개교한 본교는 절묘한 시점에 개교한 셈이지요. 음악과 미술과 무용 등이 각자 칸막이를 치던 시대가 아니라 경계를 허물고 융합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예술 선진국에 살아야만 수준 높은 예술을 향유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온라인 상에서 바로 그 예술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현재 예술고의 교육과정은 예술의 특정 분과를 벗어나지 못한 채 테크닉 위주의 실기 교육에 머물러 있습니다. 전공 하나에 갇혀있는 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에서 이야기하는 VR, AI 프로그램도 다뤄보고, 코딩교육, 그리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성향을 과학과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을 잘 켜는 물리학자라든가 건축에 조예가 깊은 라면집 사장, 노래를 잘 부르는 건축가라든가 이런 식으로 예술적인 자산을 평생 누리면서 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게 우리 학교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융합예술교육입니다.

Q. 한국예술고등학교의 강점은?

한국에서 예술교육을 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듭니다. 특히 광양 같은 지방에서는 더더욱 그렇지요. 흔히 기둥뿌리를 뽑아야 대학 간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광양시와 도교육청 지원이 있기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이 무상입니다.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잠재력과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공립학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교과 선생님들도 우리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에서 이루어진 예술융합교육의 경험이 타교로 전근 가셨을 때 도움이 많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의 비전과 역할을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하셔서 일반 학교에서의 예술교육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신입생의 수준과 선발 기준은?

학기초, 학생들의 수준에 편차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상당히 우수한 학생들도 있고 앞으로 기량을 많이 향상시켜야 하는 학생들도 있어요. 학생들을 선발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게 사교육에서 배우는 테크닉보다는 아이들의 예술적인 성장 가능성, 잠재력, 창의력에 중점을 두고 평가했습니다.

음악과는 실기위주라서 한계가 있으나, 미술과는 정물을 주고 주제를 표현하는 것으로 실기 시험을 바꾸었습니다. 면접을 도입해서 아이들의 표현력과 말을 듣고 예술에 대한 의지나 꿈을 파악했습니다. 면접을 도입한 이유는 앞으로의 융합예술교육에서는 협업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사교육으로 완성된 아이들을 받기보다는 기량은 조금 부족하나, 자기만의 고유한 표현을 계속 지켜온 아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발견했을 때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납니다.

Q. 앞으로 남은 과제는?

융합예술교육을 시스템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에 부응하는 융합예술교육으로 확립하여 교육과정을 차별화해서 전국 단위의 우수한 예술 고등학교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전남 지역의 예고가 아니라 전국 단위의 차별화된 예술고등학교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통해서 좋은 예술고등학교로 자리 잡으면 전남 지역의 우수한 예술인재들이 우리 학교로 올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가 전남의 예고로만 국한된다면 전남의 예술영재는 전부 수도권으로 빠져나갈 것입니다. 전국 단위에서 성공해야 지역의 인재를 유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역에 있는 학교로 전락하고 지역의 영재는 서울로 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것입니다. 그런 걸 막기 위해 광양시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국 단위에서 좋은 학생들을 유치하고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목표이자, 제게 남은 과제입니다.

Q. 4년 이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저는 학력고사 세대입니다. 학력고사 다음날은 머릿속에 없는 것처럼 공모 임기가 끝나는 2023228일 이후의 날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광양에서 튼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전국 단위에서 다른 예고가 제공하지 못하는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어떻게 제공할까를 생각하며 현재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대학에도 융합예술관련 학과가 생기는데 우리 학생들에게 어떤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하여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오직 그것만이 현재의 고민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가을 햇살이 따사롭다. 아직은 공립 특수목적고인 한국창의예술고가 광양에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 좋은 시설과 환경에서 보다 많은 아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년이면 첫 졸업생이 생긴다. 그들의 진로가 그 어느 때보다 기대된다.

·사진=광양문화연구회원 양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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