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철 기자
“절차적 하자는 없다. 모든 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
요즘 광양시 공무원들께서 한결같이 내놓는 답변이다. 이 너무나도 당연한 답변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대며 자신들의 책임 없음과 당당함의 배경으로 삼기에 전혀 주저함이 없다. 법과 절차를 밟아 업무를 수행했는데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이나 책망에 ‘심히 억울하다’는 속뜻까지 숨겨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공직사회에서 절차적 하자의 경계나 법적 테두리는 최소한의 조치일 뿐이다. 그것을 벗어난 행정행위는 비난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법적 책임소재를 따져야 하는 영역으로까지 갈 수밖에 없다. 기본이라는 말이며, 생색낼 일은 더더구나 아니라는 말이다.
시민이 공직사회에 요구하는 건 법적 영역에 위치하는, 살벌하고 위태로운 범법적 경계를 넘나드는 공무수행에 있지 않다. 시민의 소박한 요구는 공직사회가 시민의 편에 서서 일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법조문이나 행정절차 따위를 따지면서 서류 뒤적여대다가 아무런 고민조차 없이 결재서류에 덜컥 서명하고 할 일 다 한 것 마냥 점심은 어떤 것을 먹을까 고민이나 하는 공직자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한 행정행위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시민사회에 어떤 피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될지, 어떤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할 일인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공직자의 당연한 자세이자 책임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기본 바탕은 시민과의 공감 능력이다.
그러나 이 공감 능력은 책상머리에 앉아 서류나 뒤적거린다고 자연 발화되는 것이 아니다. 공감하려면 공감의 대상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돼야 하는데 가장 밑바탕이 되는 것이 상대와의 대화다. 그게 소통의 첫걸음이다.
기자는 지난 8월 진상면 산사태 참사와 옥룡면 축사 갈등을 두고 단순함과 신속성에 기반을 둔 행정단위에 대한 위험성을 이야기한 바있다.
신속성과 단속성에 기반한 행정행위와 불통의 피해자는 바로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더디더라도 충분한 협의가 반드시 수반돼야 하고 첨예하게 이해가 갈리는 문제일수록 적극적인 소통과 설득, 상대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며 광양시의 적극적인 현장중심 행정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광양시의 불통과 현장을 무시한 행정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모습을 또다시 목도 중이다.
진상면 산사태 참사와 옥룡면 축사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이번 세풍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 역시 전형적인 광양시 불통 행정의 인과다.
광양시는 이번 한전의 송전탑 변경 요구를 쉽게 수용한 것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책상머리 행정’으로밖에 달리 이를 말이 없다. 그 잘난 ‘절차’와 ‘법적 요건’에 맞춰 관련 부서의 의견만 묻고서 말이다.
이들과 몇 번의 연락과 협의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광양시가 내놓은 자료라곤 관련 부서의 ‘의견 없음’이라는 회신밖에 없다. 그 어디에서도 현장을 찾았다거나 주민을 만났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서도 이번 갈등이 제기되고 질문이 쏟아지자 광양시가 내놓은 답변이 바로 “절차와 법적 테두리 안”이라는 말이다.
이 말속에는 ‘시민’은 없다. 있다면 오로지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궁색하거나 안일한 공무원’의 언어가 존재할 뿐이다. 그러면서 저리 당당한 모습에 기가 찰 지경이다. 참 비겁하거나 안하무인 태도라 아니할 수 없다.
한전은 당초 지중화 계획을 세웠던 만큼 광양시가 서둘러 변경 인허가를 내줄 아무런 이유가 없는 일이다. 기간과 비용 문제를 한전이 들고 나왔겠거니, 추론이 가능하겠으나 그건 광양시가 고민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특히 백운산과 구봉산 송전탑 건립 갈등 등 누가 보더라도 지역 곳곳에서 수많은 주민 갈등을 양산했던 송전탑 건립 문제 아닌가. 무뇌아적 사고방식을 가진 게 아니라면 이번 인허가를 통해 그 갈등의 재연을 충분히 예측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경험의 축적을 통해 이미 예견된 일이지 아니한가.
무엇보다 광양시의 행정이 한 번이라도 시민의 편에서 생각했다면, 아니 추후 광양시의 미래도시 발전을 고민했더라면 지중화를 송전탑으로 바꾸는 일에 광양시가 이처럼 한전과 손발을 맞춘 듯 일을 진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변명하지 마라. 당신들은 다만 의자 위에 붙은 당신의 엉덩이를 잠깐이라도 떼기 싫었을 뿐이다. 요구할 게 많은 뿔난 시민을 만나거나 잔소리 들을 게 뻔한 시어머니 같은 시의원들을 만나기 귀찮았을 뿐이다. 하여 당신들이 이 잘난 ‘절차와 법’을 떠들면 떠들어 댈수록 한순간 시민의 편이고자 한 적 없는 당신들의 태만이 도드라질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