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밥그릇 하나
                                                   김기택

동그랗게 허기를 말아 앞발에 턱을 괴고
개는 졸린 눈으로 누워 있다 그르렁거리던 허기도
편한 자세에 취해 한껏 늘어져 있다
졸린 눈을 찌르는 한 줄기 가는 빛

개밥이 채워져 있는 동안 가려져 있던 그릇 하나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는 동안 보이지 않던 그릇 하나
그 깊은 빈 공간이 차갑게 빛을 내고 있다
개는 위장 속에서 쉬고 있던 신음을 꺼내어
나직하게 으르렁거리며 그릇의 빈 깊이를 노려본다
허기의 힘이 게으른 다리를 일어나게 한다

개는 한 차례 크게 짖어본다
그릇 속의 빈 공간은 움직이지 않는다
위협적으로 여러 차례 계속 짖어본다
우렁찬 소리는 비어 있는 둥근 자리를 샅샅이 핥고 나서
다시 혀와 목구멍 속으로 들어온다
허기는 빈 그릇보다 더 깊어진다
미동도 동요도 없는 적을 향하여

드디어 개는 흔들던 꼬리를 박차고 돌진해간다
빈 그릇을 물어 흔들고 할퀴고 차고 뒤집고 굴린다
빈 그릇은 이리저리 요란하게 굴러다니며
허기가 마음껏 울부짓도록 내버려둔다
상처나고 찌그러지는 그릇 속의 빈 공간
가볍고 날카로운 금속의 소리는 위장 속에 부딪치다가
맑게 씻겨져 나온다

정안수처럼 가늘게 떠는 허기의 울림

허기는 즐거운 놀이
목줄도 없고 네 다리와 꼬리도 없고
주인도 욕도 매질도 없는
고요하고 둥근 밥그릇만 있는
 


※시인 김기택 - 1957년 경기 안양 출생
-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가뭄> 당선
- 1991년 시집 <태아의 잠>
- 제14회 김수영문학상 외 다수



김기택의 시선은 항상 탐욕으로 상징되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무 미건조한 인간 군상에 닿아 있지요.

시 <개 밥그릇 하나>에서 드러 나는 시선도 마찬가집니다. 

시인은 여기서 허기진 개가 빈 밥그릇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는 장면을 시시콜콜하게 묘사하는데 밥그릇 앞에서 개의 행동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습니다.

조급증에 시달리는 시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참, 할 일 없어 보이기도 할 법하지요. 

그러나 이 시는 대책 없이 허기에 휘둘리는 어리석은 개의 움직 임에 대한 ‘자세히 들여다보기’이면서 나아가 고도 소비 사회에서 충족되지 않는 물신화된 욕망 때문에 자존과 위엄을 잃어버리고 허둥대는 인간에 대한 풍자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개든 사람이든 생명의 ‘몸’들은 먹어야만 살 수 있고 “빈 그릇 보다 더 깊어진” 허기 앞에서 ‘개’는 “빈 그릇을 물어 흔들고 할 퀴고 차고 뒤집고 굴린다”는 시인의 중얼거림은 그래서 거짓일 수 없지요.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 욕망의 존재인 ‘개’는 거의 미친 듯한 행동을 보이는데 인간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겠지요.

아니죠. 인간이라면 오히려 이상반응을 보이는 존재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군요. 그래서 시인의 차갑고 날카로운 해부학적인 시선은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무심한 듯, 그러나 세묘처럼 ‘빈 그릇 앞의 개’를 통해 물신화된 욕망 때문에 비루해지는 인간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김기택의 시선이 닿은 무대는 탐욕과 각종 위험이 범람하는 도 시입니다.

김기택은 접안렌즈를 들이대듯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도시문명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동물화된 욕망을 포착하지요.

빈 ‘개 밥그릇 하나’ 그 앞에서 당신은 여여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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