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꽃 -박영근에게
                                                            도종환

모과꽃 진 뒤 밤새 비가 내려
꽃은 희미한 분홍으로만 남아 있다
사랑하는 이를 돌려보내고 난 뒤의 감당이 안되는
막막함을 안은 채 너는 홀연히 나를 찾아왔었다
민물생선을 끓어 앞에 놓고
노동으로도 살 수 없고 시로도 살 수 없는 세상의
신산함을 짚어가는 네 이야기 한쪽의
그늘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늘 현역으로 살아야 하는 고단함을 툭툭 뱉으며
너는 순간순간 늙어가고 있었다
허름한 식당 밖으로는 삼월인데도 함박눈이 쏟아져
몇군데 술자리를 더 돌다가
너는 기어코 꾸역꾸역 울음을 쏟아놓았다
그 밤 오래 우는 네 어깨를 말없이 안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점 혈육도 사랑도 이제 더는 지상에 남기지 않고
너 혼자 서쪽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빗속에서 들었다
살아서 네게 술 한잔 사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살아서 네 적빈의 주머니에 몰래 여비 봉투 하나
찔러넣어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몸에 남아 있던 가난과 연민도 비우고
똥까지도 다 비우고
빗속에 혼자 돌아가고 있는
네 필생의 꽃잎을 생각했다
문학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목숨과 맞바꾸는 못난 꽃
너 떠나고 참으로 못난 꽃 하나 지상에 남으리라
못난 꽃,


오늘의 시는 시인이 시인에게 쓰는 편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을 상자하면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 도종환에게 시선이 닿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못난 꽃’이라는 시를 통해 다시 부른 박영근, 노동자 시인이자 마흔일곱 열매 맺지 못한 나이에 세상 밖으로 홀연히 걸어간 박영근의 지친 어깨 위에 쓸쓸한 시선이 고정됩니다.

시를 쓰면서도 사는 날 어느 한 시절, 노동의 현장을 떠난 적이 없는 박영근은 전북 부안군에서 1958년 태어났습니다.

1980년 군대를 다녀온 뒤 1981년 <말과 힘>이라는 동인지를 발간하기도 했던 문학청년이었으나 구로 3공단 등지에서 노동자로 살았지요. 

그러다 <反詩 6집>에 시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 동을 시작했습니다.

박영근을 시작으로 노동자 시인이라는 시인이 탄생된 이후 박노해와 백무산, 김해화, 김기홍 등의 노동자 시인들이 노동의 현장을 고발하게 됩니다. 박영근의 목소리는 그 처음이었던 셈이지요. 

198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재창립하자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민중민족문화운동의 첨병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는 평소 “노동자가 주인공이 되는 시만 쓰겠다는 생각은 없다.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곤 했지요.

박영근은 안치환이 불러 대표적인 민중가요로 떠오른 ‘솔아 솔 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자이기도 합니다.

‘백제 6’이라는 부제 가 붙은 시 ‘솔아 푸른 솔아’가 그것인데요, 박영근은 지난 2006년 5월 결핵성 뇌수막염과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나이 마흔일곱이었지요. 여기 ‘솔아 푸른 솔아’ 전문을 싣는 것으로 그를 다시 추억해봅니다. 

부르네 물억새마다 엉키던/아우의 피들 무심히 씻겨간/빈 나루 터, 물이 풀려도/찢어진 무명베 곁에서 봄은 멀고/기다림은 철없이 꽃으로나 피는지/주저앉아 우는 누이들/옷고름 풀고 이름을 부르네.//솔아 솔아 푸른 솔아/샛바람에 떨지 마라/어널널 상사뒤/어여 뒤여 상사뒤//부르네. 장마비 울다 가는/삼년 묵정밭 드리는 호밋 날마다/아우의 얼굴 끌려 나오고/늦바람이나 머물다 갔는지/수수가 익어도 서럽던 가을, 에미야/시월 비 어두운 산허리 따라/넘치는 그리움으로 강물 저어 가네.//만나겠네. 엉겅퀴 몹쓸 땅에/살아서 가다가 가다가/허기 들면 솔잎 씹다가/쌓이는 들잠 죽창으로 찌르다가/네가 묶인 곳, 아우야/창살 아래 또 한 세상이 묶여도/가겠네, 다시/만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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