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동백숲길에서
                                            고재종

누이야, 네 초롱한 말처럼
네 딛는 발자국마다에
시방 동백꽃 송이송이 벙그는가
시린 바람에 네 볼은
이미 붉어 있구나.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박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
그예 씻어 보겠다는 나인가.
이윽고 저렇게 저렇게
절에선 저녁종을 울려대면
너와 나는 쇠든 영혼 일깨워선
서로의 무명을 들여다보고
동백꽃은 피고 지는가.
동백꽃은 여전히 피고 지고
누이야, 그러면 너와 나는
수천 수만 동백꽃 등을 밝히고
이 저녁, 이 뜨건 상처의 길을
한번쯤 걸어 보긴 걸어 볼 참인가.
 


※시인 고재종
- 1959년 전남 담양 출생
- 1984년 실천문학사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에 시 <동구 밖 집 열두 식구> 발표하면서 시작활동
- 1993년 제11회 신동엽창작기금
- 시집 <날랜 사랑: 외>
- 시 <백련사 동백숲길에서>로 2002년 제16회 소월시문학상


강진만 갯가 바람이 매서운 강진 땅에 이르면 꼭 들러야 하는 것 이 몇 곳 있지요.

강진읍 한 켠을 넉넉히 채우고 있는 영랑의 모란이 핀 생가와 그 아랫자락에 터를 잡은 시문학기념관을 둘러보고 나면 가야할 곳, 그 첫째가 월출산이 산 끝자락에 동백숲을 내어주면 그 동백숲이 병풍을 치듯 감싸고 있는 장엄한 극락보전이 자리 잡은 곳, 바로 무위사입니다. 

무위사 무량수전은 굵은 팔뚝처럼 꼿꼿하게 건물을 지탱하고 있 는 주심포에 살포시 얹힌 맞배지붕이 그 웅장함 속에 숨어 있지요.

무엇보다 본존불인 아미타불이 자리 잡고 있는데 무엇보다 천년 세월을 담고 있는 벽화는 매우 강렬한 것이어서 갈 때마다 매번 새로움을 갖고 돌아옵니다. 

물론 다산초당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산초당은 조선 정조 때 뛰어난 학자였으나 신유박해로 관직을 잃고 유배의 길을 떠돌던 정약용의 유배처지요.

특히 다산은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돼 강진으로 다시금 유배길에 올라 10년 세월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역사에 꼭 안타까움으로만 남아있지 않은 것은 목민심서 등 아름다운 그의 학업 대부분이 이곳에서 집필 됐기 때문이지요. 

마지막을 꼽으라면 바로 백련사라는 걸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하물며 다산초당을 지나 산숲에 오르면 백련사가 나옵니다. 산길 곳곳에는 아름드리 동백숲길이 펼쳐지는데요, 붉은 꽃 동백이 환하 게 피는 초봄이면 장엄하기까지 합니다.

백련사는 다산과 혜장스님, 초의선사, 그리고 추사 김정희가 이 길을 걸으며 시담을 나누었다고 전해옵니다.

이외에도 강진은 수많은 볼거리에다 먹을거리까지 가득한, 참 매력적인 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주 잠깐 청춘의 한 때를 이곳에서 보냈으니 어쩔 도리가 없지요.
 
오늘 다가온 고재종의 시 <백련사 동백숲길에서>을 다시 읽으니 다산초당과 백련사 이음길을 걷던, 방황하던 시절의 기억이 아주 잠깐 붉게 피었다, 뭉텅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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