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의 서울 
                         최승호

하루에도 너댓번씩 전화가 온다
그는 늘 말이 없다
나의 목소리를 듣기만 한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같은데
나는 그가 누군지 모른다

 

자신을 숨은 신이라 생각하는 정신병자?

밤중에도 새벽에도 전화가 온다

그녀인지도 모르겠다

내 애를 낳았다고 주장하던

결혼 전 그 거머리 여자는 아닌지

집으로도 사무실로도 전화가 온다

저쪽은 늘 말이 없다

내가 있는지 없는지 듣기만 한다

 

혹시 나를 뒷조사해 컴퓨터로 읽고 있는

전지전능한 형사는 아닌지

나는 불안에 끄달리기 시작한다

저쪽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모든 전화기들이 복면을 쓰고 일어나

나를 둘러싸고 킬킬대는 밤

 

전화선을 뽑아버린다

불통의 밤

벽이 나를 막아주는 밤

잡귀雜鬼들은 무심無心으로 물리쳐야 한다고 나를 달래며

사악해지는 밤 속에서

한결같은 달빛을 쳐다본다
 


시인 최승호

  1. 년 강원도 춘천
  1. <현대시학>에 시 <비발디> 등의 추천
  2. <세계의 문학> 주관 오늘의 작가상
  1. 년 시집 <대설주의보>
  2. 년 김수영문학상
  1. 년 이산문학상

최승호의 시편들을 다소 단편적으로 규정 짓는다면 그건 도시와 그 음험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도시민들, 그리고 그들이 일궈놓은 문명에 대한 비판이지요. 그 안에 숨 쉬고 있는 욕망, 또 그 욕망을 쟁취한 자와 실패한 자의 삶의 궤적을 다소 냉소적인 어조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혹자들이 보통 일컬어 온 단어를 애써 찾는다면 세속, 그것도 서울 한복판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의 울림이지요.

어쩌면 그것은 봄이면 그냥 쑥과 냉이, 달래들이 싹을 틔우는 작은 농촌의 자식들이 대부분 체험하는, 이 생경하고 차가운 도시로 몸을 옮기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부침일 수도 있을 터지만 한편으론 이 도시 속에서의 삶이 갖는 강고하거나 과도하게 경직스러운, 혹은 시선과 시선 사이를 떠도는 전쟁터의 피비린내를 지독하게 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최승호의 어조는 그러나 철저하게 제3자의 처지를 견지하려고 바둥됩니다. 어떤 대상이든 개관화하려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다시 말하면 그 객관으로 인해 도시의 삶은 조금 더 신산스러울 지경입니다. 적확성이라는 게 따스함에 견줄 수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특히 몹시도 바쁜 듯 허겁지겁 살아가는 도시인의 삶을 잠시 떨어져 객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보다 단조로운 삶을 찾아보기 힘들지요. 일어나서 씻고 출근해 일하다가 노동의 시간이 꺼지면 퇴근해 씻고 자는, 권태로운 일상이 끝없이 반복될 뿐이니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최승호를 이를 통해 도시적 삶의 병적 징후를 발견하는 시선을 오래도록 놓지 않습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이를 두고 도시화 현상에 대한 정직한 문학적 반응이라고 건조한 언어로 평가했으나 그것이 20세기와 20세기를 넘어선 이후 문명의 부정적 체화가 이루어진 서울로 대비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한 마디로 최승호는 복면을 쓰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통해 욕망과 욕망이 격돌하는 치열한 현장을 넘어 종전 후 화려하거나 혹은, 더없이 쓸쓸하게 무너진 삶의 현장을 써내려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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