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곡면 신금리 ‘유성 오토바이’와 유성희 대표
어린 소년에서 할아버지까지…‘꿈’ 키워온 공간
“여긴 내 삶의 터전, 끝까지 함께하고픈 마음”

도시는 갈수록 급변한다. 2~3년만 지 나도 동네 풍경은 하루아침에 확확 변하고, 눈 깜짝할 새 고층 건물이 지어진다. 갈수록 빨라지는 환경 때문인지 사람들은 조금만 익숙해져도 쉽게 싫증을 낸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공간을 지켜온 가게들이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려주는 가게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여유에 잠기게 도와주는 사람들. 공간과 사람, 관계가 만들어나가는 오래된 가게 에는 ‘추억’이 담겨있다.

1957년 옥곡 장동마을에서 태어난 유성희(66) 대표는 50여년 간 신금리에서 자전거·오토바이 수리점 ‘유성 오토바 이’를 운영 중이다.
한 자리에서만 무려 50년을 이어온 가게. 이곳에는 유 대표 ‘인생의 역사’가 담 겨있다. 친형과 함께 처음 가게를 열었던 열여섯의 소년은 어느덧 남편, 아버지가 됐고 지금은 ‘할아버지’로 불린다.

강산이 5번이나 바뀐 긴 세월이지만 유 대표는 가게를 처음 열었던 그때가 아직 도 눈에 선하다고 말한다.

‘유성 오토바이’로 이름을 바꾸고 오토 바이·자전거 수리점을 운영했던 1979년.
‘유성 오토바이’로 이름을 바꾸고 오토 바이·자전거 수리점을 운영했던 1979년.

유 대표는 “옥곡에서 태어나서 여기 쭉 살았지. 가게를 지키는 동안 주변이 많이 변했어. 논, 밭이었던 곳에 건물이 들어서고 농협도 생기고, 여기도(옥곡면 사무소) 원래는 논이었고 벚꽃나무가 가득했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랜 세월 운영해서인지 주변에서 이제는 쉬어도 되지 않냐고 많이 묻는데,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곳인데 어떻게 떠나겠어. 이제는 그냥 끝까지 같이 가는 거지”라고 말했다.

유성희 대표
유성희 대표

50년 속에 담긴 ‘희로애락’
유 대표는 1972년 열여섯의 어린 나이로 친형과 함께 ‘현대 자전차포’를 시작 했다. 자전거가 ‘자전차’로 불리던 시절, 그 시절의 자전거는 필수 교통수단이었고, 자전거 수리를 도맡아 하는 ‘자전거 기술자’도 있었다.

아무런 기술 없이 막연히 차린 가게였지만, 유 대표에겐 ‘목표’가 있었다. 어깨 넘어 틈틈이 자전거 기술을 배웠고, 가게를 마친 밤마다 연습을 이어갔다. 덕분에 1979년에는 본인의 이름을 딴 ‘유성 오토바이’로 간판을 바꾸고 홀로 운영을 이어갔다. 이때 간 판을 바꾸면서 새롭게 ‘오토바이 기술자’ 도 데려왔다.

유 대표는 자전거 수리를, 직원은 오토바이 수리를 맡아 나름 체계적인 운영을 이어갔지만,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오토바이 기술자의 월급이 높아 아무리 일을 해도 수익이 나지 않는 것. 유 대표는 그렇게 또 5년을 오토바이 수리 기술에 매진했고, 이제는 나무랄 데 없는 베테랑 기술자가 됐다.

그는 “지금은 자동차에 다 밀렸지만, 원래는 자전거가 많았고 그다음엔 오토바이가 많았지. 한창 광양제철소가 들어 서던 80년대는 공사 다니는 인부들이 오토바이를 참 많이 탔어. 그때 내가 돈을 좀 벌었지. 직원도 셋이나 데리고 있었고”라며 “그때 번 돈으로 집도 사고 논, 밭, 임야, 과수원도 샀지”라고 말하며 웃음 지었다.

오토바이를 수리하느라 유 대표의 손은 늘 기름때 범벅이었지만, 조금씩 늘어나는 인지도와 수입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 ‘유성 오토바이’가 있는 건물의 주인은 유 대표다. 처음엔 세를 얻어 시작했지만, 악착같이 벌고 모아 결국 신보다 높다는 ‘건물주’가 된 것.

유 대표는 “가게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꼽으라고 하면, 이 가게를 샀을 때가 생각나. 세를 얻어 살다가 가게 를 사면서 증축해 집을 지었지”라며 “이 곳 덕분에 아이들 먹이고 입히는 데 어려움 없었고, 대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킬 수 있었어. 여긴 나에겐 삶의 터전이자 고마움이 가득한 곳”이라고 가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1972년 현대자전차포 시절 가게 앞 유성희 대표의 모습
1972년 현대자전차포 시절 가게 앞 유성희 대표의 모습

긴 시간 가게를 운영하며 크고 작은 시련도 많이 겪었을 법한 그가 어느 때 보다 가장 힘든 순간은 바로 요즘이라고 한다. 전례 없던 ‘코로나19’ 상황에 들어 서면서 그나마 이어오던 손님마저 줄어 들었기 때문. 자동차에 밀려 수입이 예전만 못해도 자주 찾아주는 단골손님들이 있어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코로 나19 이후 지역경제가 전체적으로 침체 되니 유 대표 또한 어려움을 피해 가긴 힘든 상황이다.

그는 “요즘 정말 힘들어. 자주 오던 사람들도 이제는 많이 돌아가셨고, 자동차에 밀려 수입이 많은 상황은 아니지”라며 “그래도 힘내야지. 여기 동네뿐 아니라 진상, 광영에서 와주는 분들도 있고, 이사 와서 새롭게 인연이 된 분들도 있으니까.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가게를 지켜가고 싶어. 계속해 나를 찾아주고 있잖아”라고 밝게 웃었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