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초등학교 옆에서 문방구로 처음 문 열어
“함께 늙어준 가게에게‘ 고맙다’ 말하고 싶어”

밤부터 내리던 약비가 새벽녘에서야 옷깃을 여미는 아침입니다. 여기저기 몸에 달라붙은 잠기운을 털어내고 방문을 나서니 잔뜩 구름에 가려 어스름한 하늘아래 너른 세풍 들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갑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하긴 해도 꼬리가 긴 겨울은 여전히 쉽사리 사립문을 열고 훌쩍 떠나기를 주저하는 까닭이지요.

아랫목에 던져 놓았던 외투를 다시 입고 장선자(여, 75세) 씨가 가장 먼저 몸을 옮기는 것은 꽁꽁 얼어붙은 가게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불씨를 품고 있는 난로에 연탄을 새로 갈아 넣습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아마 새벽 7시를 오가는 시간일 테지요. 매일 쳇바퀴 같은 일상이어서 몸이 세월을 앞서기 시작한 언제 땐가부터 시간을 따라 움직이는 일이 이토록 자연스러울 수 없습니다.

53년째 세풍초 옆 세경슈퍼 운영 중인 배완휴 장선자 부부
53년째 세풍초 옆 세경슈퍼 운영 중인 배완휴 장선자 부부

문을 열고 머지않아 손님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언제나 그렇듯 첫 손님은 참 반갑습니다. 작업복 차림인 것을 보니 인근 산단이나 도로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일 테지요. 장사도 사람을 상대하는 일임은 분명해서 이제 대충 차려입은 입성만 봐도 느낌이 딱 오기 마련입니다.

장사를 시작한 지 쉰하고도 다섯 해가 더해가니 일러 무엇하겠습니까마는, 하물며 작은 생수와 담배 두 갑을 챙겨 나서는 걸 보면 짐작이 분명할 겁니다. 거기에다 얼굴이 낯선 걸 보면 인근 현장을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테고. 인근에 담배를 판매하는 가게는 세경수퍼가 유일한 데 인근에서 일하는 애연가들은 세경슈퍼를 모를 수 없지요.

‘땡그랑’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다음 손님은 인근 세승마을에 사는 도청떡이네요. 농사짓고 사는 일에 게으름이란 게 있을 수 없지만 참 부지런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 동네 아웁니다. 고추 모종을 세울 시절이 아직 좀 남았는데 “노끈 어딨냐”고 묻습니다.

주인장 허락도 없이 제집인냥 냉큼 커피 한 잔을 타면서 말이지요. 스물둘에 낯설고 물선 세풍땅 세승마을 배센집에 시집온 뒤 도청떡은 이곳 부흥마을로 터를 옮기기 전까지 1년 넘게 참 살갑게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아마 같은 처지여서 더 그랬겠지요.

물론 세경슈퍼에 푸르고 날렵한 노끈이란 물건이 없을 리 없습니다. 명색이 일곱 개 마을이 얽기설기 부대끼며 살아온 세풍리 유일한 슈퍼인데 사시사철 농사에 쓰일 물건을 아니 들어 놓을 수는 없지요.

대부분 광양읍 내에 나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는 일이 지금은 당연한 듯 흔한 풍경이 됐지만 버스도 다니지 않았던 시절엔 그게 쉽지만 않았습니다. 좀처럼 나갈 것 같지 않는 제품도 구입해 두는 건 당장 급하게 물건이 필요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섭니다.
아무래도 도시와 농촌은 여전히 다를 수밖에 없지요.

세경슈퍼는 세풍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습니다.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전염병때문에 요즘은 자주 들을 수 없으나 왁자지껄,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해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지요. 이쯤이면 눈치 빠른 이들은 눈치를 챘겠지만 세경슈퍼는 원래 문방구였지요. 세풍국민학교였던 당시 학교 서무과, 그러니까 요즘 말로 행정실에서 근무하던 남편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습니다.

있어야할 것은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세경슈퍼 내부 전경
있어야할 것은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세경슈퍼 내부 전경

공책과 연필에서부터 크레파스, 도화지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는 문방구였습니다. 뽀빠이나 쫀득이, 알사탕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도 가게 모퉁이 한 구석을 차지했습니다. 손님들 대부분이 코흘리개 초등학교 아이들이었던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지요.

준비물을 챙기지 않아 잔뜩 상기된 아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몇 학년인 것만 알아도 무엇이 필요한지 금방 알 수 있었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학교 역시 주요 고객이었는데 다른 것이 있다면 아이들과는 달리 제법 씀씀이가 커서 꽤 많은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었지요. 가을운동회라도 열리는 날이면 참 행복했습니다.

물론 세경슈퍼에도 변한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학교 준비물을 사기 위해 바삐 문을 열어젖히던 아이들 대신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훌쩍 중년이 돼버린, 성인이 된 아이들이 다시금 가게를 찾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공책을 집어 들던 아이들 대신 술잔을 기울이는 중년이 있을 뿐입니다.

참 그리고 20년 전 퇴직한 남편이 농삿일 틈틈이 가게 일을 함께 돌봐 준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혼자 가게를 운영해온 탓에 귀찮을 때도 없지 않으나 군말 없이 가게를 봐주는 남편 때문에 친구들과 곗날도 챙기고 마음 편히 외출도 하게 됐으니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많은 나날입니다.

생각해보면 세경슈퍼는 참 고마운 가게입니다. 그리고 세풍주민들 역시 그렇습니다. 이들 때문에 남편 월급을 모아 학교 옆 제법 너른 땅도 살 수 있었고 세상 물정 모르고 태어난 삼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었지요.

선자 씨는 “시집 오고 스물셋에 가게를 열었는데 벌써 53년 세월이 흘렀네요. 오래 생각지 않아도 가게와 주민들 한테 항상 고마울 수밖에 없어요. 특히 함께 늙어준 가게에게 한 번쯤은 꼭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라고 고마움을 전합니다. 바지런히 가게 탁자를 쓸면서 쓸면서 말이지요.

“오래전에 내 나이 일흔다섯이 되면 가게를 그만두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새 벌써 일흔다섯이 다 됐네. 헌데 아무래도 당장 가게를 닫는 건 어려울 것 같아. 다른 이에게 세를 줄까 생각도 해봤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찾아오는 손님들 그냥 보낼 수도 없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힘에 부치지 않을 때까지는 문을 열어둬야지 뭐”라고 말하는 얼굴에 배시시 웃음이 번집니다.
‘땡그랑’ 다시 가게 문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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