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묘지
                           조정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
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돼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 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하나의 형상 역시
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
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 
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
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 
나의 영혼이
이 침묵 속에서
손뼉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
어느 형상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
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
물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
결빙의 노래를 내 발밑에서 들려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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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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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눈비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한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그리고 다시 한때는 물과 불의 형상으로 오던 나날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헛된 휴식과 오랜 기다림
지치고 지친 자의 불면의 밤을
내 나날의 인력으로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둠은 존재의 처소에 뿌려진 생목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 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나 자신에게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 
영혼이 그 위를 지긋이 내려 누르지 않는다면.


※시인 조정권
- 1949년 서울 출생
- 현대시학 창간호 시 <흑판> 등단
- 1975년 신감각 동인
- 시집 <산정묘지> 등 다수
- 1092년 소월시문학상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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