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학 
                                      노향림


우리 아파트 바로 위층엔 신혼부부가 세 들어 삽니다.
원양어선을 타고 결혼식 다음 날 떠난 신랑을 기다리는
그녀는 매일 종이학을 날립니다

한두 마리 날아오르다가 수십 마리가 우리집 베란다에
떨어져 죽습니다. 그중 몇 마리는 아직
허공을 날고 있습니다

날개 없는 학을 무엇이 날려주는지 모른 채
나도 마주 손 흔들어 줍니다
어느덧 그녀의 하늘에서 나는 흔들립니다
종이학이 날아올 때마다 덜컹대는 창문,
새로 돋는 아이비 덩굴손도 흔들립니다

허물린 담장 위엔 이승의 보이지 않는
새파란 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매캐한 하늘 속 홀로 있어도
그리움 깊으면 흔들린다는 사실이
황홀해져 또다시 흔들립니다

불현듯 그대에게 날려 보낸 학 한 마리는
기다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시인 노향림
- 1942년 전남 해남 출생
- 1970년 <월간 문학> 신인상 시 <불> 당선
- 1998년 시집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외 다수
- 2019년 제11회 구상문학상 외 


오래도록 차갑고 무언가 알 수 없지만 오래도록 그리운 시절이 다가올 것 같은 요즘입니다.

하룻밤 풋사랑에도 정념은 불타오르고 잉걸불처럼 뜨겁던 사랑도 서리 맞은 듯 이내 쉬 식어버리기도 하는 법이니 내내 견디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사무치던 임이 가고 그림자도 이내 사라져버린 나날을 흔들리며 살다 보면 또 그러할 일입니다.

견딘다는 것은 이렇게 말처럼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사실 지독하다고 해야 옳을 겝니다. 세상 사는 일 가운데 견딘다거나 버틴다는 말은 벼랑 끝에 서서 이승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한 발버둥에 가깝기 때문이지요.

삶을 향한 치열한 그 모습을 두고 어찌 수동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종이학을 날립니다. 그리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섭니다. 혹여 그리움 한 조각 사라지는 날을 두려워하는 까닭입니다.

치열하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버티고 견디어야 볼 수 있는 임이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움은 멀리 날지 않으나 그 또한 어쩔 수 없습니다.

임에게 가 닿을 것이라 믿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만 잊지 않기 위해서지요. 그것이면 만족스러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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