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광양제철소 주택단지와 포스코 교육재단

1. 광양제철 주택단지 사람살이

1) 광양제철 주택단지와 주민들의 삶

금호동 광양제철 주택단지는 1982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2020년 현재 10개의 주택단지에 약 5천 세대가 살고 있다. 주택단지 조성 목적은 광양제철소 근로자들의 주거 안정이다. 이런 대규모의 사업은 국가와 법령의 뒷받침이 필수이다. 1981년 정부가 광양만 산업기지 개발을 확정하고, 다음 해 광양산업기지개발 기본계획광양제철소 주거단지개발 기본계획에 따라 광양제철소와 주거단지가 건설됐다. 주거단지는 우선 금호도 일대 약 60만 평의 부지에 건설되었고, 그 후 단지개발 2차 계획에 따라 금당도와 금섬 매립지를 추가로 개발해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 주택단지와 편익시설은 금호도, 금당도, 금섬 매립지로 이루어진 부지에 조성됐다. 행정구역상 금당동과 금호동으로 분리되어 있다가 현재는 다시 금호동으로 통합돼 운영되고 있다.

광양제철소 주택단지
광양제철소 주택단지

처음 1982년 건설 당시에는 금호도 일대 60만 평에 2436 세대, 9800여명 정도의 인구를 목표로 했다. 주거단지와 공장지원 시설을 분리하고 편익시설을 중심부에 두어 효율성을 높이고 구릉지를 최대한 보전해 자연공원으로 활용했다. 회사의 성장에 따라 1986년부터 금당도를 포함한 40여만 평에 5488 세대, 8400여명을 추가로 개발햤다. 중심에 쇼핑센터, 문화시설 등을 두었고 생활권은 금호·금당 2개 권역으로 나누었다.

1990년 이후에는 제3, 4기 고로 공정이 진행되면서 소본부 옆 추가 매립지와 금섬 지역에 새로운 주거 수요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레크리에이션 시설을 개발했다. 주택단지는 어언 35년이 지났지만 최근 실시한 10개 단지 모두 구조 안전진단 결과가 A등급이 나왔다. 하지만 건물 내·외부에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다. 주택단지의 규모는 18평 이하가 38.5%, 24평 이하가 99.1%이며 소형 주택이 대부분이다. 주택유형(21평형에만 42가지)은 다양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만족도는 다르다.

직원들의 주거안정과 편의를 위한 주택은 초고층 위주의 경제적 이윤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금호도 밖의 아파트와는 매우 다르다. 충분한 부지확보로 넓은 주차장과 녹지 공간을 조성하였고 저밀도의 쾌적한 주택단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광양제철소와 교육재단 교직원만 거주했다. 그 후 1996년 자회사 직원들에게 개방을 한 이후로 외부인에 대한 주택매매가 점점 확대됐다.

금호동은 198711일부터 전라남도 태금면에 속해, 법정리는 금호리로 했다. 그리고 행정리는 도촌, 내동, 대동, 양도 등의 자연부락으로 나뉘었다. 198911일부로 동광양시로 승격이 되면서 금호동은 태금면 금호리가 되었고, 금호동과 금당동으로 나뉘었다. 199511일부터는 동광양시와 광양군이 통합돼 광양시로 승격됐다. 다시 돌고 돌아 19981125일부터는 작아진 두 동을 통합해 다시 금호동으로 했다.

2) 주택단지의 첫인상과 고박태준 회장의 기여

처음 금호동을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깜짝 놀랄 것이다. 이 한적한 한반도 남단 시골에 단일 공장 규모로 세계 제일의 제철소가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수려한 경관을 보면 그런 놀라움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바다 위의 제철소라는 별명을 가진 광양제철소가 착공(19853)한 지 올해로 38년이 되어 간다. 광양제철소의 성장·변화와 더불어 사원들의 주택단지와 자녀들이 공부하는 학교단지 또한 발전과 쇠락을 함께 하였다. 잘 정비된 넓은 도로와 전원 속에 빨간 벽돌집, 곳곳의 쇼핑몰과 체력증진센터, 넓은 공원과 잔디밭, 벚꽃터널을 만드는 백운대길, 단풍이 우거진 마로니에길, 아침저녁으로 산책과 조깅을 즐길 수 있는 해안도로, 그리고 텅 비어 고요하기까지 한 골프장 등 유럽 어느 동네에 온 느낌이라고들 한다.

어느 사이 나무들은 도시 숲을 이루어 하늘을 덮을 만큼 자라나 이제 불편함을 줄 정도라 조금씩 베어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언젠가 고김수환 추기경이 광양제철 주택단지를 둘러보고 지상낙원이라 감탄했고, 모스크바대학 총장은 직원 모두가 아담한 집 한 채와 자가용 한 대에 안정된 직장이 있는 이곳을 죽은 레닌 동지가 꿈꾸던 파라다이스다!”라며 탄복했다고 한다.

한편 광양제철소는 창립 이후 오랫동안 제철단지 밖에 사는 이들로부터 제철왕국이니 제철공화국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러한 세간의 평가는 금호도 해안가를 철망으로 에워싸 감히 넘어올 수 없다는 인상을 주었고 유니폼을 입은 포스코 근로자들이 회사 밖에서도 입고 다녀 쉽게 도드라지는 측면도 작용했을 것이다. 더구나 외부인이 회사를 방문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고, 상당 기간 단지 내 주택 매매는 물론 임대 또한 철저히 외부인에게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최첨단 자동화로 인해 제철소 사원 모집도 예전처럼 많지 않아 단지 학생들조차 크게 감소했다. 이로 인해 광양제철소와 금호동 주민들은 회사의 안정적 성장과 함께 단지 내 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서의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3) 주택단지 내 이사移徙 이야기

제철 주택단지의 가장 흔한 이야기는 이사로부터 시작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는 모양이 거의 비슷하니 이사만큼 큰 뉴스가 없다. 주택단지 대부분의 가정에서 지난 35년간 한두 번씩 이사를 한다. 지리적으로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이지만, 생활 유형은 대도시와 크게 다른 것이 없어 경제 형편이나 자녀들의 성장에 따라 이사를 하게 된다.

제철단지 내 주택에는 네 유형이 있다. 첫째, 공간 확장형이다. 자녀수가 늘어나거나 늙은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경우 더 넓은 공간이 있는 사랑아파트나 초원아파트, 두 개를 통합 확장한 송죽아파트를 선호한다.

다음으로 특수목적형이다. 특히 자녀들이 학교에 쉽게 걸어갈 수 있거나 부부가 함께 직장을 다녀서 자녀를 승용차로 등하교시키기 어려운 경우는 학교단지 입구에 있는 목련빌라나 제철남초등학교 부근을 선호한다.

셋째는 외부 투자형이다. 단지 내 18형 리모델링을 안 한 아파트는 수년째 2~3천만원 선에서 매매되고 있다. 이들은 단지 내 생활의 여러 편리함은 즐기고 좁은 공간의 불편함은 감내하면서 인근 도시나 멀리 수도권에 아파트를 장만한다. 이는 장성한 자녀들의 생활 안정과 함께 장차 은퇴 후 이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임시거주형이다. 단지 안에서 자영업을 하거나 학원이나 과외를 하는 경우가 꽤 많다. 그리고 노인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 주택 개방 이후 도난이나 교통사고 우려가 거의 없고 저렴한 겨울철 난방 등 여러 면에서 노인들이 살기 편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외부에서 노인들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 게다가 점점 은퇴 후에 집을 팔지 않고 쎄컨 하우스처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백숙아 광양문화연구회 회장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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