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만에서 - 송수권 作

기억하라 이 땅에는
네 자손의 죽음의 때가 온다
태양을 머금은 롬바르디 대평원의 
저 바다에 뜨는 아침노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며
저 밭고랑에 씨앗을 품고 천둥과 벼락
소낙비의 싱싱한 밤을 이야기하던
그 기다림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다만 독한 한 방울의 위스키에
백인에게 말을 내주고 여편네를 내주고
마구간에 목을 메어 죽어가던 인디언처럼
네 곳간에는 악의 씨앗들로 가득 넘치리라

황혼에 낙조가 지고
황금 부챗살로 갈라지는 바다
갈매기들도 지금은 인디언을 홀리던
유리알 구슬 같은 보상금을 따라 어디로 흘러갔나
기름배가 뜨고 보이잖는 거대한 손이
크레인을 움직이고 쇳소리가 해일처럼 밀리는 곳

추운 겨울이면
물오리들도 새끼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던 땅

그 물오리 새끼 한 마리가
오늘은 선술집 유리창에 부딪혀
거대한 굴뚝에 꽂혀 흐르는 연기 속에
누룽지 타는 내음을 혼신으로 꿈꾸며
아저씨, 아저씨 경비조 열두 놈 중
이곳 원주민은 저 혼자였거든요
저의 피가 유다의 피라고 몰아 내리치는 거예요......

으으으 밤새도록 비가 올 것을 예감하며
해변의 낮은 언덕에 숨어 울던
그 옛 물오리들의 울음소리여

 

※시인 송수권 - 1940년 전남 고흥 출생
- 1975년 월간 <문학사상>에
시 <산문에 기대어> 등 5편 당선 - 시집 <산문에 기대어> 외 다수
- 1988년 김소월시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외 다수 - 1990년 국민훈장 목련장 
- 2015년 고흥군 송수권 시문학상 제정 - 2016년 졸 

시인 송수권은 서정성과 현실성을 갖춘 몇 안 되는 한국의 시인 입니다. 교사였던 시인은 주로 고향 인근을 떠돌았는데요, 떠돌이병을 고치지 못했던 까닭에 주로 섬 학교에 근무를 자처하곤 했지요.

그가 시를 쓰는 동안 한국사회는 유래를 찾기 힘들만큼 단기간 내 산업화 과정을 겪었고 군부독재는 오래도록 시대의 삶을 황폐 하게 만들었지요. 특히 섬학교에서의 교사생활을 끝내고 상륙했던 1980년 3월, 운명처럼 광주를 만났다. 얄궂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모처럼 도회지로 둥지를 옮긴 뒤 2개월 후 5·18광주민중항쟁이 터졌던 게지요.

그리고 시대의 급류에 휩쓸려 그렇잖아도 연약하게 삶의 끈을 붙들고 있던 학교에서 쫓겨나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그러하여도 그의 시는 남도의 미학에 뿌리를 거두지 않습니다.

한반도의 강산 이곳저곳을 훑고 다니는 동안 전통시의 미학을 묵묵히 껴안기를 결코 놓지 않는 묵직함을 보여준 시인이었습니다.

서두에 밝힌 바대로 송수권은 서정성과 현실성을 동시에 지닌 몇 되지 않은 시인입니다.

시 <광양만에서>는 그 가운데서도 현실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지요. 작품에 등장하는 광양만은 삶과 생태가 공 존하는 공간이 아닌 파괴적 공간입니다. 물오리로 상징되는 텃새는 서식지를 잃은 물오리이기도 할 터이나 혹은 그곳에서 밀려난 원주 민의 다른 이름이지요. 

1980년대 이후 백인에게 고토를 빼앗긴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유리알 같은 보상금을 손에 쥐고 무수한 공장에게 터전을 내어준 사람들과 무수한 생명들에 대한 쓸쓸한 시선이 따갑게 머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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