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원·쌍사자석등 환수위, 문화재 반환 현지 답사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환수과정 견학

광양중흥산성 쌍사자석등 환수위원회와 광양문화원 관계자들이 원주문화원 등을 방문해 반출 문화재 환수과정을 견학하고 쌍사자석등 환수 방안을 모색했다. 
환수위와 문화원 관계자들은 지난 22일 원주문화원 방문에 이어 23일엔 법천사지를 찾아 반출 문화재 반환 최초 사례가 되고 있는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의 반환 과정을 확인했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국보 101호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은 고려시대 고승 해린 스님의 유해를 모신 자리에 세워진 탑이다. 984년 원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승려로서 최고지위인 왕사, 국사가 되어 온 백성과 왕의 존경을 받았다. 1070년 10월 스님이 돌아가시자 법천사 동편 산기슭에 다비를 했다. 1085년 왕실과 스님의 제자 그리고 고려 백성들은 정성을 다해 아름다운 탑을 세워 스님의 유해를 모시고 비석에는 스님의 행적을 자세히 기록했다. 

높이 6.1m의 화강암 재질 석탑의 조성 시기는 1067~1085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통일신라 이후 부도가 8각을 기본형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지광국사현묘탑은 전체적으로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한국 묘탑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아름다워서 슬픈 역사를 간직한 이 탑은 우리 민족의 수난과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광국사현묘탑의 비극은 1911년에 시작된다. 지광국사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법천사가 임진왜란을 거치며 폐사지가 된 이래 지광국사현묘탑비는 400여년 동안 사실상 방치된 상태였다. 아무도 관심이 없던 법천사지를 한 일본인이 지광국사현묘탑비를 정원 석물로 팔겠다는 마음을 먹고 주민들을 동원해 탑을 해체하기에 이른다. 일본인 상인에게 넘어간 지광국사현묘탑비는 서울로 옮겨진 뒤 명동, 남창동 등을 전전하며 한낱 장식용으로 전락하는 초라한 신세가 된다. 1912년에는 바다를 건너 오사카로 건너가기까지 했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자 조선총독부는 어쩔 수 없이 반환을 지시했다. 지광국사현묘탑은 기증받는 형식을 통해 조선총독부의 소유가 돼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가 열리고 있는 경복궁 내 건춘문 부근으로, 1932년에는 경회루 앞으로 옮겨진다.

지광국사 현묘탑 자리
지광국사 현묘탑 자리

시민추진위원회 구성·활동
관리 소홀이 오히려 기회

이후에도 파란만장한 역정은 계속된다. 해방을 맞이한 기쁨도 잠시, 6·25전쟁이 발발하고 1년이 지난 1951년 포탄에 맞은 상륜부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처참한 모습으로 6년을 버틴 지광국사현묘탑은 1957년 경복궁을 산책하던 이승만 대통령의 눈에 띄어 긴급 복원 절차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콘크리트로 땜질을 하는 방식이었기에 완벽한 복원이 아니었고, 게다가 콘크리트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박은 60여개의 철심은 부식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다시 한번 해체돼 고궁박물관 뒤뜰로 옮겨지고, 마침내는 더 이상의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는다. 2005년 용산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세워져 다른 문화재들이 대거 이동하는 가운데서도 안전을 장담하기 힘들어 이전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2016년, 그동안 도둑맞은 것으로 알려졌던 기단부 사자상이 사실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다는 게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 이 사건은 문화유산 관리 행정의 난맥상을 드러낸 촌극이었다. 

원주시와 원주문화원은 지난 1995년부터 지광국사현묘탑 등 외지로 반출된 문화재 환수운동을 벌였으나 국립중앙박물관은 보존과 관리 등을 이유로 거부했다. 
그러나 복원되는 만큼 이제라도 기구한 운명을 지닌 지광국사현묘탑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범시민적인 환수운동이 전개돼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2016년엔 지광국사 탑 본래자리 이전 시민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의 원주 반환을 위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추진위는 서명운동 등을 통해 지광국사 현묘탑의 원주 반환에 대한 시민 공감대를 형성한 뒤, 본격적인 반환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때 도난당한 것으로 알려진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의 사자상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수장고 내 문화재들의 목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와 함께 환수 운동이 급물살을 탔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관리 소홀을 인정하며 소유권을 포기하고 문화재청으로 넘어가면서 원주로 올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2016년 지광국사 현묘탑의 전면 보수·해체가 결정되면서 보존처리 후 어디에 모실 것인지 관심이 집중됐다. 강원도와 원주시, 불교계, 추진위는 탑이 제자리인 원주 법천사지에 설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19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법천사지에서 회의를 열고 지광국사 현묘탑을 법천사지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문화재청은 승탑 복원 위치로 본래 자리인 법천사지 승탑원을 1안, 법천사지 전시관을 2안으로 제시했다. 두 안 모두 원주로 지광국사 현묘탑이 이전하는 방안이라 일단 승탑이 100년 수모의 종지부를 찍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은 확실시됐다. 

법천사지 발굴, 현묘탑 반환 사전 준비
원주시는 지광국사 현묘탑 반환 운동과 함께 법천사지 발굴조사도 함께 추진했다.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 위치한 사적 제466호 법천사지는 전체 사역 면적이 14만8679㎡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찰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돼 고려시대에 크게 융성한 고려왕실의 원찰로서 사적지 내에는 국보인 지광국사탑과 탑비가 조성되는 등 우리나라 불교문화유적의 백미로 꼽힌다.

1995년부터 시작된 법천사지 정비사업은 토지매입 7만6069㎡, 문화재 발굴조사 3만5052㎡, 사지정비 1만26㎡ 등에 모두 67억원이 투입됐다. 원주시는 토지 6만㎡를 추가 매입하는 것을 비롯해 문화재 발굴조사와 유물전시관 건립 등에 410억원을 투입했다. 

법천사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구전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지광국사현묘탑 위치가 법천사지인 것이 확실하다는 조사 결과가 밝혀졌다. 
탑지의 상면에서 지광국사현묘탑비 표지석이 확인됐으며, 현묘탑의 상층기단 모서리편과 석등의 화사석편과 석등의 간주석으로 사용된 사자상의 석재편도 일부 수습됐다.

원주시 역사박물관 문화재 팀 관계자는 “법천사지 발굴은 1995년부터 시작해 현재 10차 발굴을 했고 추가적으로 계속 발굴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당초 계획은 2031년에 정비가 끝나는 걸로 계획을 잡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원주는 지광국사 현묘탑 반환만 요구한 게 아니라 법천사 발굴 조사를 통해 박물관건립까지 미리 투자한 것이다. 지광국사 현묘탑이 원래 위치로 오거나 박물관에 옮겨지더라도 받아들일 모든 준비가 종합적으로 다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재는 본래 자리에 있을 때 본래 가치를 드러낸다. 반출 문화재 환수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민간이 하나 된 조직을 구성하고 범시민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라며 “이어 시장과 국회의원, 시·도의원 등 정치권도 그들이 풀어야 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두규 광양중흥산성 쌍사자석등 환수위원회 공동대표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의 귀향 결정은 반출 문화재 정책의 모범 사례다. 원주문화원을 중심으로 한 민간 주도의 17년간 끈질긴 환수 운동이 있었고, 원주시는 법천사지 발굴조사를 10회에 걸쳐서 진행하며 유적전시관까지 개관을 앞두고 있는 현장은 참으로 놀랍고 감동적이었다”며 “광양중흥산성쌍사자석등 환수위원회의 활동과 광양시 문화정책에서 본보기가 되고도 남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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