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의 쉴만한 물가

해발 50~2000m에 핀다고 하니 진달래는 대한민국 어디에나 피는 꽃입니다. 창꽃(참꽃, 이후에 피는 먹지도못하는 철쭉은 개꽃이라고도 했지요)이라고 했습니다. 또 알고 보니 두견주를 담그는 두견화라고도 하더군요. 다른 이름 다 두고 우린 참꽃이라고 많이 했고, 이 꽃과 연관된 추억이 없는 분들 없을 것입니다. 제겐 무엇보다 먹거리 없던 시절 이 꽃이 피는 시기에는 아이들과 여지없이 산으로 참꽃 꺾으러 가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꽃은 잘 꺾이는 가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손에 힘을 조금만 주어도 툭하고 힘없이 꺾였죠. 그래서 꺾으면서 먹고, 입술이 붉게 물들 때까지 먹고, 그래서 배가 찬다 싶으면 그래도 또 한 묶음씩 꺾어서 손에 꽃다발처럼 들고 산을 내려오곤 했습니다.
쉬이 생채기가 나고, 썩 예쁘진 않지만 누구나 탐하는 꽃, 그리고 아무리 꺾고 꺾어 내어도 돌아서서 보면 온 산천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은 이 나라의 민초들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꽃에 관한 민담도 모두 슬픈 이야기들입니다. 하늘 천사가 내려와 진도령과 결혼하고 낳은 딸이 달래인데 어느 날 천사가 하늘로 돌아가 버리자 떠난 아내와 어머니 그리워 하다 죽은 달래와 아빠 진의 무덤에 핀 꽃이라고 해서 진달래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옛날 탐관오리들과 사치와 향락에 빠진 임금 때문에 힘든 세상에 흉년까지 들어서 피폐해진 가운데 예쁜 규수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데 진도령과 달래라는 처녀는 함께 도망치다 귀인을 만나 천리마와 칼을 얻어 탐관오리를 심판하는데 임금은 거짓 항복을 한 이후에 이들에게서 천리마와 칼을 빼앗고 죽인 이후에 역시 무덤에서 핀 꽃을 진달래라 했다는 이야기등입니다. 우리 민초들이 살아온 아픈 역사와 많이 닮았습니다.
산천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아무리 꺾어도 표도 안나고, 배부르게 해 준대도 진달래는 두고봐야 할 꽃입니다. 함께 있어야 이쁘고, 또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피고 지는 꽃이 진달래인데, 그렇게 해도 이듬해는 또 변함없이 꽃을 피워 냈습니다. 나름대로 아등바등 살아가는 꽃을 함부로 손대선 안되겠죠. 임금이 거짓으로 항복하고선 돌아서서 뒷조사 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최근 민간인 사찰 문제로 어수선한데 진달래같은 민초들 아무리 잘 꺾이고 맘대로 할 수 있다해도 생채기를 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진달래 꽃은 자주색 꽃을 따 먹었어도 이상하게 입술은 새파래 집니다. 안먹었다 할 수도 없이 증거가 남습니다. 태생도, 살아온 날도 힘겨운데 힘있는 자들에 의해 생채기까지 내서 앞으로도 살기 힘들게 하면 민초들은 살아갈 희망이 없겠죠. 유난히도 이번 봄엔 꽃들이 수난을 당합니다. 그럼에도 꽃을 피우는 봄꽃들 앞에 부끄럽지 않길 바라고, 담주 쯤엔 봄꽃 활짝 피었다는 소식 남녘에서부터 들려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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