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너뛰지도 않고 쫓기지도 않으며, 정신없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게 시간이 알맞게 흘러가 주는 오직 나만의 삶을 호시를 타는 즐거움으로 사는 방법은 없을까? 닥쳐오는 사건들과 삶의 만남을 어떤 사람은 즐거워하며 맞고 또 어떤 사람은 괴로움으로 받아들일까?

흥부전과 심청전, 춘향전을 이야기하며 선과 정직과 성실을 소중히 생각하고, 부족한 시대를 경험하며 모든 것을 소중히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살아온 우리가 아닌가.

전쟁의 폐허를 이겨내고 미국 실리콘밸리의 앞선 기술개발이나 일본의 탁월한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개발성과를 세계인 상대로 제품화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고, 여러 나라의 디지털 기술에 한류의 열풍을 탑재하고 연결망을 교직하여 21세기의 디지털 비단을 짜 비단길의 시작을 한반도로 옮겨놓은 우리가 아닌가.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생명 세계의 본질인 출산율은 OECD 평균의 절반도 못 되는 꼴찌가 되고, 자살률은 OECD 평균의 배가 넘는 나라가 되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대중화는 보이스피싱 등 사이버범죄의 병폐를 유발하고 젊은이들의 고뇌와 좌절은 깊어만 가는 살아가기 어려운 나라가되고 말았다.

옛날보다 비교가 안 되는 풍요로운 시대에 살면서도 살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나라. 삶의 순간들을 타인의 우려와 달리 즐겁게 받아들이는 축복은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 찰나에 깃들어있는 의미를 어릴 적 시냇가 돌 틈에서 징거미새우를 잡으며 환호하던 추억처럼 느껴보기는 이제 불가능할까?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거실에서 자라고 있는 84개의 화분을 보고 나이 들며 왜 번거로움을 사서하고 있냐며 놀라는 표정과 우려의 말을 한다. 서산산행에서 만나는 분들은 곱게 핀 산 벗과 백목련도 보며 쉬어가며 걷지, 무엇을 그리 생각하며 바삐 가느냐며 의아해한다. 

나는 나이 들며 저놈들이라도 있어 그래도 꼬무락거려지고 물주기, 햇볕쪼이기, 환기 등에 신경을 쓰면 치매 예방에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며 미소로 화답한다. 이제 3월이 되니 꽃기린의 꽃들은 더욱 싱그러워지고, 호접난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대부분 다육식물은 꽃대를 정성들여 틔워 세우며, 석곡은 새싹들을 살찌우며 다음 해의 꽃들을 약속한다. 풍란들은 연초록 뿌리를 조심스레 뻗고 새잎을 싹 틔우며 머지않은 날 청아한 꽃을 보여줄 것을 예고하고 있다.

관심과 사랑으로 자세히 보고, 정성 들여 보살피는 자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경험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이 생명체가 변화하는 신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며 다른 사람의 글에는 쉽게 감격하면서도 타인에게 감동을 주는 글쓰기나 말하기에는 어려움을 느끼는 요즘이기도 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지 않다면 그 삶은 나름대로 보람 있는 ‘살아감’이 아닐까? 소유보다는 존재의 소중함을 인식하며 사는 삶.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기를 기대하기보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 기대하고 바라기보다는 기뻐하고 감사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 여유와 웃음 띤 얼굴로 이웃을 위로하고 순간순간을 기분 좋게 만드는 삶. 어려움을 조금은 긴장하며 살라는 하나님의 배려로, 시련은 망각의 지혜를 깨우치는 기회로 받아들이는 삶. 숨을 헐떡이고 풀리는 다리를 추스르며 능선에 올라섰을 때 느끼는 상쾌함과 작은 성취를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아가면 어떨까.

나는 매번 서산을 오를 때마다 초코바 10개를 가지고 만나는 반가운 분들에게 나누어준다. 구입하는데 드는 돈보다도 잊지 않고 챙겨가고, 겨울이면 장갑 낀 손으로 스틱을 옮겨 쥐며 나누어 주는 것이 번거로움이 따른다. 둘레길을 도는 제일 나이 많은 어른 한 사람으로 서로 반갑게 주고 받는 인사가 고맙고, 건강을 생각하며 꾸준히 서산을 찾는 젊은이들의 정성이 대견해서다. 

“맡겨 놓은 것처럼 오늘도 받네요! 오늘 하루 잘 보내십시오”, “계속 올라오셔서 너희들 귀감이 되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고마운 젊은이들이 있어 나는 오늘도 새로운 힘을 얻어 산에 오른다.

산다는 게 별것인가! 정성에 대한 화답은 타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달콤하고, 소중하고, 고맙다. 살아가는 모습처럼 죽음도 맞는다던가. 오늘도 나는 고맙고 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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