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_1

“고맙네. 맛있어서 오빠 갖다주면 좋아하겠어” 식당의 메인 좌석에서 모임을 끝낸 70대 어머니들은 만남의 반가운 시간보다 다음 약속을 잡는데 더 목소리 높여 시간을 할애한 후 밥집을 나선다. 그때 홀을 담당하는 주인 따님이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건넨다. 진한 단짠으로 찬 중에 입맛을 자극했던 풀치 조림이다. 식당에서 반찬을 챙겨주는 것은 요즘엔 낯선 풍경이다.

평소 다이어트를 구실로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은 점심을 먹지 않는다. 아침엔 수프와 과일, 저녁은 샐러드 위주의 식단이 차려진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한 끼의 식사가 소중해진다. 꼭꼭 씹어서 오래도록 제철 맛을 간직할 수 있는 최적의 식사가 자연스레 백반으로 자리를 잡았다. 백반이 좋다. 한주에 한두 번 먹는 한 상 백반에는 이야기와 풍요로움이 있다. 튀는 것 없는 밍밍한 산 능선 같은 익숙하고 다양한 반찬들의 어울림이 나이 오십을 넘은 식객의 모습을 닮아서 그럴 것이다.

코로나의 영향권을 벗어나 오랜만에 만나는, 또 멀리서 온 인사와 밥 한 상 함께 한다면 나는 어느 집 문을 밀고 들어설까? 광양 읍내에는 멀리 유명하진 않지만 오랜 시간 사람들과 함께한 밥집들이 있다. 지금도 식객들이 붐비는 이유는 사람들의 입맛이 길 들었는지 아니면 사람들 입맛에 밥집이 맞추었는지 모를 일이다. 백발의 노신사를 닮은 밥집, 몸 하나로 새벽부터 황혼까지 일평생 밭고랑에 고개 숙인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을 닮은 밥집, 저마다의 색깔을 입은 사람을 닮은 밥집들이 골목마다 자리하고 있다. 어느 골목 어느 밥집으로 들어갈까.

유정식당. 읍내 버스터미널 건너편 골목 초입 택시회사 앞에 자리한다. 첫 번째로 유정식당에 들어선 이유는 우리 읍내를 닮았기 때문이다. 식당 내부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밥을 먹는 사람들 면면은 동네 어르신들, 정장을 차려입는 여성들, 작업을 마친 인부를, 회사원들로 다양하다.

대표 음식은 생선구이 백반이다. 여기에 계절 음식은 주로 봄철을 대표하는 서대회무침, 정어리 쌈밥, 도다리 매운탕이 있다. 그리고 장어탕 등 보양식들이 자리한다. 생선 백반을 먹어보자. 먼저 밑반찬이 나온다. 생김치, 콩나물무침, 고춧잎나물, 물김치, 꼬막무침, 가지볶음, 갓김치, 김자반, 생김과 간장 그리고 풀치 볶음과 방게 간장조림, 황석어젓이 나온다. 이어 간장게장과 주메뉴인 갈치 두 토막, 작은 조기 두 마리가 잘 구워져 양념을 두른 채 상의 중앙에 자리하고 하얀 쌀밥과 배추된장국이 놓이면 이제 시작이다. 

배추된장국은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하다. 적당한 된장 간에 부드러운 배추 맛은 그 옛날 적잖은 식구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먹는 고향 집 밥상을 떠오르게 한다. 전반적으로 반찬의 간이 약간 진한 것이 이 집의 특징이지만 배추된장국은 갈치 살 한 점 밥 위에 올려주시던 아버지의 무뚝뚝하지만 따뜻함이 오랫동안 묻어나는 이물감이 일절 느껴지지 않는 익숙한 맛이다. 머물고 싶은 편안한 맛이다. 아내와 함께 자리하니 1만2천원 한 끼 밥상이 곧 집이다. 

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따뜻한 온기가 그리운 날, 오래된 손때마저 정겹게 느껴지는 오늘 점심은 ‘유정식당’이다. 주인 어르신이 오랫동안 건강하시길. 그 맛이 따님에게 고스란히 이어지기를 바라며…. 다음엔 어디로 가지? 

글·사진=정은영 민주당 지역위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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